오늘 아침 요한 파헬벨의 캐논을 듣는다.
오늘 아침 요한 파헬벨의 캐논을 듣는다. 이 곡도 참 질리지 않는다. 나름의 생명력으로 쉼 없이 무엇이라 이야기하는 그런 곡이다. 정확한 제목은 모른다 해도 어디에서 한 번 이상은 들은 곡이다. 나는 무척이나 많이 들은 곡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질리도록 들었다. 가사 없이 전해지는 현악기의 선율은 가사 없음의 가사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가사 없음의 가사는 파헬벨의 음과 내 삶의 글이 더해져 나름의 가사 있는 곳으로 내 혼에 내려 앉기도 한다. 참 좋다.
가사가 있는 곳은 그 가사로 나에게 이야기를 던낸다. 그 가사의 이야기가 가지는 보편적인 슬픔과 기쁨 속에서 같이 울고 웃는다. 그러나 많은 연구곡들의 그 가사 없음은 가사와 다른 뜻으로 나에게 말을 던낸다. 그리고 더 많이 더 깊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하지만 그 깊이 다가오는 만큼 나에게도 말 할 기회를 많이 준다.
우울 한 날 가사 있는 곡은 그 우울함... 내가 찾을 수 없는 어떤 언어의 그 우울함을 나 대신 묘사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가사 없는 곡은 도저히 언어로는 담을 수 없는 그 우울함을 그냥 우울해... 그렇게 너 자신을 받아드리고 안아줘... 이렇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여간 오늘 아침... 캐논이 참 좋다.
2020. 02. 02
오늘은 데칼코마니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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