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신학76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과 더불어 있다는 것이란? (더불어신학 2020 12 25) "과연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게 될 때가 오고 있으니 바로 지금입니다. 사실 아버지께서도 당신을 예배하는 이런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요한복음서 4장 23절)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느님과의 더불어 있음 바로 그곳입니다. 물리적인 장소가 그 본질이 아니란 말입니다. 과거 지하무덤에서도 초대 교회의 신앙은 부끄러움 없이 자라왔습니다. 조선 시대 박해의 시간을 생각해 봅시다. 거대한 주교좌성당 없이도 우리의 신앙은 진실했고, 그 진실함 앞에서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제 강점기와 독재 시기 우리 그리스도교가 부당한 권력에 손을 들어주거나 그들의 폭력에 눈을 감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지학순 주교님'을 보아도 '문익환 목사님'을 보아도 '안중근 의사'.. 2020. 12. 26. 비교하지 맙시다!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더불어신학 2020 12 24) 사람들 사이 이런저런 대화를 합니다. 어느 집은 얼마이고 어느 집은 또 얼마이고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가치를 비교하는 대화는 결국 자신의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확인하게 합니다. 서글픈 대화이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대화가 그러한 것이고, 그것을 정보라는 이름으로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친구와 절대 하지 않는 대화입니다. 친구와의 대화는 읽은 책이나 읽을 책이나 요즘 준비하는 일과 같은 것들이지 서로의 집값이나 자식의 성적 등은 절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비교하게 하고 비교 가운데 인정하고 싶은 않은 타인의 차가운 시선 속에 나를 나에게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대화를 하지 않은지 4-5년이 됩니다. 그 이전 경험한 극심한 마음의 아픔이 지금은 많이 덜어졌습니다.. 2020. 12. 24. 이끌림에 열심히 따라갑니다. (공부하며 기도하라 Stude et ora 6) "평화의 끈으로 영의 일치를 힘써 지키시오."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4 장 3절) 다른 이들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솔직하게 마음속 양심은 더불어 삶으로 이끌게 합니다. 아프고 힘든 이들을 그냥 두고 가기 쉽지 않습니다. 그냥 너는 아파라 나는 잘 살겠다 생각이 먼저 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냥 두고 돌아서면 마음이 아픕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고 어찌할 형편이 되지 않아 힘들 때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구세군 종소리를 그냥 지나치기도 쉽지 않습니다. 주머니에 2-3천 원 들고 다니는 사람이지만 구세군을 지나면 그 돈을 그곳에 둡니다. 나의 커피 한잔보다 그 돈이 있어야 할 자리는 구세군 납비가 맞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그러면 이상하게 .. 2020. 12. 11. 전체를 향한 쉼없는 부서짐, 종교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예수가 오늘 오신다면 그 성당, 예배당을 보고 ‘이 성전을 헐라!’하지 않을까? 본래 어느 종교나 전당을 짓는 것은 그 역사의 마지막 계단이다. 전당을 굉장하게 짓는 것은 종교가 먹을 것을 다 먹고 죽는 누에 모양으로 제 감옥을 쌓음이요, 제 묘혈을 팜이다.” (함석헌, , 사상계 1956. 1월 30호) 항상 우리는 최선이라 말합니다. 이런저런 비판을 들으면 지금은 이런저런 대안들이 있어서 문제없다 합니다. 그러나 1956년 함석헌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무겁게 다가옵니다. 과연 이 생각에 무엇이라 답할까요? 결국 종교는 자기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끼리 우리 편이 되어 그 속에서만 살다 보면 우리 편의 밖은 보이지 않습니다. 밖을 모르는 안은 썩기 마련입니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 2020. 11. 19.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