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나이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이제 곧 철학 박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어느 순간이었다.
내가 다니던 철학과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설마 설마했지만, 정말 철학과는 사라졌다.
다른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기대하는 사이 정말 사라졌다.
그리고 대학도서관이 아닌 알바생으로 나는 살아가고 있었다.
보기 좋은 알바?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라진 철학과 출신에, 지방 사립대와 지방 사립대 대학원 출신의 노력은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벽보 붙이고 길거리에서 전단지 돌리고
서류 정리하고 단순한 업무 보조도 하고...
가족에게 알리지 못한 이런 저런 온갖 일들 하루에 14시간...
많을 때는 16시간 이상 노동을 했다.
그렇게 일을 해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살았다.
철학... 일년에 한 편 씩 학술지에 논문을 적으며
나름 부족한 건을 공부를 하기 위해 잠을 자지도 않고 공부했다.
14-16시간 알바 하고
알바 사이 사이 노력하면서 논문을 쓰고 번역하고 그렇게 공부했다.
대학 도서관엔 나의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
내가 책을 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몇 번 공짜로 자리를 빌려 대중 인문학이니 뭐니 하려 했지만
나의 말 실력은 그들의 귀에 달콤한 것이 아니었다.
불편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이 모이지 않았다.
1명...2명... 그렇게 모인 사람 앞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강의하고
오캄의 논리학대전 2부를 강의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과 고백록을 강의했다.
내가 책을 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평일을 14-16시간 알바를 하고
주말 오전...
철학을 나누었다.
나는 아직도 대학이 어색하다.
6년 정도... 중간 중간 쉬면서 시간강사 생활을 했다.
한 학기에 한 강좌를 강의했으니 이걸 시간강사 생활을 했다 하긴 힘들고...
그 기간 동안 학생들과 시키지도 않은 것들을 했다.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 철학을 강의하고
한국철학을 강의했다.
또 이런 저런 내가 번역한 것을 기본으로 강의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신성한 모독자>라는 책이 되었고
또 하나는 지금 나온 <대한민국철학사>가 되었다.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책들이다.
이 책을 만들어야지 기획하며 시작한 책도 아니고
3.1혁명과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임시정부...
윤동주 탄생... 등등
당시 대구 시내 한 커피 가게에서 알바하고 철학 강의하던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기념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때 나의 지난 강의록을 다시 정리하고 다듬었다. 너무 길고 긴 내용을 줄였다.
그렇게 책이 된 것이 <대한민국철학사>다.
대학에서 버려진 존재다.
버려지고 나서 보니 이 놈의 세상은 지잡대라 버리고
가진 것 없다고 버렸다.
가난한 부모님 아래에서 가난이 그냥 일상이었다.
생활보호자의 아들로 태어나 나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학벌도 권력도 가진 것도...
어느 하나 내새올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땅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가...
나는 보통 사람이다.
오늘 금요일 저녁 나의 철학 강의를 듣기 위해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수녀님... 등등 20분 정도가 찾아주셨다.
서로 서로 생각하는 마음에 귤을 사오기도 하고 빵을 사오기도 하고...
대단한 학벌도 아니고 대단한 권력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이다.
이런 사람 가운데 철학하는 사람이 하나 나온다는 것이 나쁜 것인가?
오히려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란 나를 버린 이들...
지잡대라 버리고
돈 없고
권력 없다 버린 이들...
내 철학의 시작은 바로 그 버려진 자리다.
그 버려진 자리가 내가 살고 있는 내 공간 속 우리의 아픔...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철학 배워서 이런 저런 외국어로 관념 속 장난하면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듯이 이야기하지 않고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없이 그냥 사람으로...
하여간 나의 책이 나왔다.
대한민국철학사이기도 하지만
나란 놈의 철학사
나란 놈의 시간 고민이 지금 이 시기 자연스럽게 세상에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인기도 없는 나의 책을 그렇게 세상에 내어준 이상북스에 정말 고맙다.
그리고 부디 여유되시는 분들은 구입해주시고
마을도서관과 대학도서관에 많이 많이 신청해주시기 바란다.
나는 좋은 철학자는 아니라도
조금 쓸모 있는 철학자이고 싶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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