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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강학회19

착한 행복 (2020년 02월 07일 서재강학회 강의록) 착한 행복 유대칠 암브로시오 강의 2020년 02월 07일 서재강학회 강의록 “탐욕스러운 인간은 이윤이 남는 것 말고는 선(좋은 것)이라고 부를 줄 모릅니다.” 어쩌면 일상의 상식이 된 말이다. 그런데 암브로시오는 왜 이 말에 그렇게 분노한 것일까? 이것은 신앙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이것은 불행한 삶을 살기 위한 다짐이다. 이것을 교육하는 것은 불행하자는 교육이다. 이것이 신앙이란 이는 나쁜 신앙이고, 이것이 행복이라면 그것은 나쁜 행복이다. “네 의지의 준칙(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 하라.” 칸트의 ‘정언명법’ 혹은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이다. 이 말의 뜻은 도덕이란 이 세상의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 2020. 2. 7.
불행하여라! 욕심에 사로잡힌 이들이여! (암브로시오 <나봇이야기> 읽기) 불행하여라! 욕심에 사로잡힌 이들이여! -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마태 6,24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하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의 것입니다.” (요한 코리소스토무스, 2,6) 교부들에게 ‘소유’와 ‘공유’는 매우 주요한 고민거리입니다. ‘소유’란 ‘나의 것’이 기본이고, ‘공유’란 ‘우리의 것’이라 말입니다. 소유 중심의 세상에선 나의 것 중심입니다. 나의 것이 더 많은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소리를 치게 됩니다. 행복의 기준도 소유물의 크기입니다. 소유물의 크기가 큰 사람은 무엇인가 세상의 이치를 잘 아는 사람 같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더 받은 사람.. 2020. 1. 17.
홀로 울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신앙이다. - 시에나의 가타리나의 또 다른 그리스도 되기 홀로 울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신앙이다. - 시에나의 가타리나의 '또 다른 그리스도'(alter Christus) 되기 그저 철저하게 혼자다. 옆엔 아무도 없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 간절한 마지막 희망이 된다. 그 사실이 아프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희망한다는 것이 잔혹한 절망의 이유다. 이렇게 마지막을 마주한다. 혼자 세상을 떠난다. 너무나 아픈 마지막이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이야기다. 병에 걸렸다는 것은 단순하게 신체의 한 곳이 아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픔이나 고통이란 단어로 담기 힘든 절망을 의미한다. 치유의 방법도 없다. 고통을 덜어낼 길도 없다. 그냥 아파해야 한다. 그리고 죽어가야한다. 흑사병은 돌림병이다. 타인에게 전염 된다. 피해야할 그 무엇이 되어 버린다.. 2020. 1. 5.
따스해지려한다. 나는 무시와 조롱이 일상인 곳에서 일했었다. 지금은 기억하고 싶지않은 조롱의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고갔다. 그 가운데 아픈 나는 그저 무력하게 아프기만 했다. 어디가서 말할 곳도 없이 그저 나는 무력한 슬픔이었다. 나의 이 아픔이 아픔이 아닌 조롱으로 이어질까 친한 벗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책망함으로 이어질까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홀로 있는 나는 별 수 없이 홀로 있었다. 무력한 슬픔으로 말이다. 조롱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들 사이, 나의 귀는 닫혀지고 나의 말은 매서워졌다. 귀로 들리는 말은 아프게 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 독한 날카로움을 토해냈다. 삶이 그랬다. 혼자 있는 것이 덜 아프다 생각했지만 아프게 외로웠다. 나와 같은 생각만이 나의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 2019.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