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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

버려진 자의 열심, 나란 놈의 열심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4. 3. 5.

나는 이번 주 수요일부터 철야 작업을 한다.
어쩌면 내가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어 걱정이다.
꼭 내가 포함되어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데
걱정이다.
나이가 드니 필요한 곳이 줄어든다.
이제껏 해온 철학 연구란 건
내 지난 삶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겐 없어도 상관없거나
처음부터 없었던 거다.
아무 악의 없이 무시해도
조금의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그런 거다.
그리 생각하면
나의 철학이란 일종의 원맨쇼다.
혼자 하고 혼자 즐거운 원맨쇼 말이다.
아직 나의 눈에 철학은 고상한 말로 이 힘겨운 삶을 가리거나 치장하는 쓸모없는 무엇일 때가 많다.
많은 이들은 이제 그런 철학 필요 없다며 버리지만
여전히 이 차가운 현실에 무엇인가 좋은 약이 철학에 있다 찾아 다니며 듣기 좋은 말로 자기 진짜 아픔을 잠시 가리는 거짓 진통제 같을 때가 많다.
철학은 그렇게 화려한 장신구가 되어 있다.
이 삶은 이리도 힘들고 이리도 악하고 쓰린데
철학은 이러면 해결된다면서 알아듣기도 힘든 이야기를 떠들고 있는 것 같다. 그 스스로도 지금 이 아픔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말이다.
화려한 장신구가 된 철학에 나는 필요 없는 존재다.
싸구려 장신구다. 지방 사립대 사라진 철학과 출신의 철학이 무슨 장신구가 되겠는가 말이다.
내 철학은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통, 그 쓰레기통에서 내가 왜 버려졌나 궁리하는 일에서 시작된 것일지 모른다. 이미 버려졌으니 쓰레기이고 쓰레기의 애씀이니 처음부터 그 애씀조차 버려진 애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버려지고
학벌 사회에서도 버려지고
그렇게 버려지고 또 버려진 자리...
눈을 뜨니 나는 철거와 폐기물 막일을 함께 하는 이들이 만들어준 작은 컨테이너 공간인 오캄연구소에 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으니 그래도 나와 같이 아픈 이들은 모여서 서로 위로하는 곳,
여기서 나의 철학은 원맨쇼가 아니라 좋다.
조롱이 없어 좋다.
나의 축하를 따지며 너 따위가 무슨 축하라고 하는 이들이 없어 좋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참 좋다.
돈이 문제이지만 말이다.
처음부터 버려진 놈이라 내 공부한 걸 들어 달라 소리쳐도 어쩌면 쓰레기통에서 울리는 잡소리에 누가 귀를 허락하겠는가.]
그런데 날 쓰레기통에 있지 않아 여겨주는 이들이 지금 나와 더불어 있어 좋다.
내 연구와 번역이 이들에게 도움이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종종 나의 애씀을 향한 귀가 적어 외롭다.
아직 나는 덜 착해진 모양이다.

2024 03 04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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