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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다시읽기8

가난한 이를 탓하지 마라! 우리 신앙이 게으른 탓이다! - 암브로시오의 분노 가난한 이를 탓하지 마라! 우리 신앙이 게으른 탓이다! - 암브로시오의 분노그럴 때가 있다. 그냥 남 탓이라 돌리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조금의 죄책감보다 그것이 편할 때가 있다. 참 이기적일 때가 있다. 먹먹한 풍경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있었다. 한 손엔 이불로 쓸 종이 상자를 꼭 잡고, 그렇게 버려진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어디에서 주워 입었는지, 바지는 너무 길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윗옷은 여성용이었다. 그렇게 서서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진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먹먹했다. 처음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고, 그 역겨운 것을 먹기 시작했을 때,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먹먹해졌다.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힘든 것을 먹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그냥 게으른 인간이라고, 도와줄 필요 없는 게.. 2019. 9. 26.
손 내밀자. 가진 것도 아픈 것도 분노도 나누자. 그것이 신앙이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분노 손 내밀자. 가진 것도 아픈 것도 분노도 나누자. 그것이 신앙이다. :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분노 ‘나의 것’이 아니면, 돌아보지 않는다. ‘나의 분노’가 아니면, 그저 잡음일 뿐이다. ‘나의 아픔’이 아니면, 그저 남의 아픔일 뿐이다. 그냥 나 ‘아닌’ 남의 분노이고, 남의 아픔이다. 그토록 쓰라린 세월호의 아픔도 마찬가지다. 그저 남의 아픔이다. 슬픈 이야기지만,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 아픔에서 나온 분노도 그저 남의 분노일 뿐이기 때문이다. 병마(病魔)를 이기지 못한 노부부가 함께 자살한 소식을 접한다. 누구도 손 내밀지 않았다. 그냥 남의 아픔이다. 남편이 죽고, 힘든 몸으로 폐지를 수집하며 생활하다 병마는 더 깊어지고, 자식도 연락을 끊어 버린 할머니가 생존을 위해 성매매의 길에 들어서고.. 2019. 9. 26.
아픔을 공유하고 소유를 공유하라. 그것이 신앙이다. 바실리우스 주교의 분노 아픔을 공유하고 소유를 공유하라! 그것이 신앙이다. : 바실리우스 주교의 분노 벌써 수년 전부터다. '공정거래'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착취하듯 빼앗아 오지 말고, 제대로 값을 주자는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오랜 시간 당연하지 않았다. 어느새 지구인에게 커피는 일상이다. 엄청난 양의 커피가 소비된다. 그러나 커피를 생산하는 국가는 가난하기만 하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하늘을 보면서 날씨도 확인해야 하고, 하나하나 직접 맨손으로 열심히 노동한다. 그 매일의 노력으로 고급 커피를 생산한다. 하지만 막상 거대한 자본의 힘 앞에 자신의 노동대가를 받기는커녕 그 결실을 빼앗긴다. 그래도 커피 이외 마땅히 할 것이 없기에 그들은 죽을힘으로 커피를 생산하고, 그 결실을 .. 2019. 9. 26.
소유에서 공유로! 교부 클레멘스의 분노 소유에서 공유로! 나눔이 신앙이다. : 교부 클레멘스의 분노 철학은 현실을 마주하며 시작한다. 신학도 다르지 않다. 특히 그 현실이 아픔이라면 더욱 더 그러하다. 철학은 그 아픔에서 시작한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플라톤에겐 철학의 출발점이 된다. 왜 스승은 죽어야하는가? 무엇이 죽였는가? 도대체 무엇이 현실이기에 스승은 이리 살다가 사라져야하는가? 청년 플라톤은 분노했다. 스승의 이상향이 좌절되는 현실 앞에서 플라톤은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 현실을 마주한 그 분노에서 플라톤의 철학은 시작되었다. 굳이 그리스철학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싯다르타를 보자. 왜 죽어야하는가? 왜 늙어야하며, 왜 아파야하는가? 사랑으로 기뻐해도 결국은 헤어지고 무뎌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왜 이 허망한 세상을 살아.. 2019.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