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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3

"사람의 화로는 신의 의로움을 이루지 못합니다." (더불어신학의 단상) “사람의 ‘화’로는 신의 의로움을 이루지 못합니다.” (γὰρ ὀργὴ ἀνδρὸς δικαιοσύνην θεοῦ οὐκ ἐργάζεται.) 야고보서 1장 20절 억울한 이의 손을 잡고 홀로 외롭지 않고 더불어 화내는 건 의로운 세상을 향한 첫걸음이 됩니다. 귀한 걸음입니다. 그러나 그 화만으로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는 건 아닙니다. 처음엔 더불어 있던 화가 어느 순간은 자기 자신의 이기심과 자기 자신의 독단의 수단이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결국 더불어 사는 곳에 있어야 할 건 ‘사랑’입니다. 화도 사랑을 위한 화만이 참다운 화입니다. 그러니 화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입니다. 우린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를 제대로 더불어 있게 하는 건 바로 사랑입니다. 서로 자기 내어줌으로 우리를 이루.. 2023. 4. 25.
우주라는 거대한 교향곡의 한 음이 되어! (공부하며 기도하라 Stude et ora 3)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 20절 20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해서 만물을 화해시키셨도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평화롭게 하셨도다. 땅 위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이 구절을 읽으며 다시 샤르댕 신부의 글을 찾아 읽게 됩니다. "주여! 엔의 숲이 아니라, 지금은 아시아 대초원 가운데 있지만, 또다시 빵과 포도주로 제대도 없이, 그저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을 넘어서 장엄하게 놓인 순수의 실재를 향하여 저 자신을 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 저는 전체 지구를 제단으로 삼아, 그 위에 쌍의 노동과 애씀을 당신을 향하여 드리겠나이다."" 저는 사제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평신도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눈 앞에서 이런 사람들 사이의 나눔은 없을 것입니다.. 2020. 12. 6.
결국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학으로 신학을 생각하며...)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모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1 요한 4장 8절)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1요한 4장 19절) 신에 대한 길고 긴 이야기를 합니다. 신은 어떤 존재이고 그 신을 향한 우리의 구원은 어떠한 것인지 참으로 길고 긴 시간 참으로 다양한 논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그것으로 가지고 서로 다투고 어느 순간엔 서로를 이단이라며 비난하며 그렇게 신에 대한 길고 긴 이야기를 토대로 서로 다툽니다. 그런데 막상 속 그 신은 사랑이라 참으로 간단하게 정의되어 나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항상 사랑하고 있으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던 그때에서 그분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2020.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