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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101호실

'신앙에게 철학의 쓸모' 스콜라 철학 강의 2 (2020.03.18)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3. 18.

2강 신앙에게 철학의 쓸모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이들이 있습니다. 흔히 그들을 ‘교부(敎父)’라고 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순수하게 철학자라고만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 상당 수는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생’ 말입니다. 이제 눈에 보이는 ‘예수’는 사라졌습니다. 그가 남긴 말들이 남았을 뿐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하는 힘으로 과연 어느 것이 예수의 참된 가르침인지 고민해야했고, 고민한 것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그렇게 고민을 전문적으로 할 순 없었습니다. 당연하죠. 지금도 시(詩)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시인(詩人)은 아니죠. 시를 평론하는 평론가(評論家)도 아닙니다. 오히려 시인의 시와 평론가의 시 평론을 읽으며 공감하고 생각하며 그렇게 있습니다. 신학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신학 전문가가 될 순 없습니다. 『성경』을 집에서 읽고 이런 저런 신학 교양서를 읽는다고 신학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예수가 떠난 이후 그리스도교의 선생들, 교부들은 전문 ‘고민꾼’이었습니다. ‘생각전문가’였습니다. ‘고민전문가’였습니다. 어느 것이 더 바른 예수의 가르침인지 생각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사유는 감성적인 것이어야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감동적인 설교는 잠시 큰 감흥을 일으키지만 오랜 시간 지속하여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이성적 동물인 사람은 감동적인 이야기보다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였고, 이렇게 철학이 신앙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의 당연하고 자연적인 물음들, 그 물음에 종교는 합리적으로 답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 답으로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담을 수 없지만, 이성적 동물로 사람이 그렇게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 그 자체를 고민하여 그에게 다가가는 것, 그 자체도 그들에겐 신앙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인이 되기 이전 생각전문가 혹은 고민전문가인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인이 되면서 그리스도교의 여러 가르침에 대하여 스스로 다져 묻고 스스로 궁리하고 스스로 답을 내어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혼자 하기보다 논쟁과 대화를 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묻고 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논쟁이 이어지면서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를 이어져갔고, 그 논쟁에서 서로가 가진 훌륭한 합리적 설명과 설득의 무기가 철학이 되었습니다. 떼르뚤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약155-240)는 그리스도교인이 되기 이전 이미 변증술(辨證術)의 달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말로 그는 변호인(辯護人)이었습니다. 따지고 묻고 답하고 다시 따지고 묻는 일에 익숙했습니다. 그는 라틴말을 학문의 언어로 사용한 첫 신학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삼위일체라고 하는 옮겨 부르는 Trinitas 등의 신학 용어를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따지고 묻는 이들은 스스로 온전히 혹은 최대한 잘 이해하려 하고, 이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언어적 수단을 설명하고 만들어내려 하니 그가 이러한 개념과 용어를 만들어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교에 들어왔고, 그 시기 자신이 이룰 뜻을 이룬 것이라 보아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제가 아닌 평신도였습니다. 평신도였지만 치열하게 사고하며 자신을 넘어 우리의 신앙을 다져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변호인인 그는 이제 그리스도교의 이런 저런 공격으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변호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는 치쁘리아누스(Thascius Caecilius Cyprianus, 약200-258) 주교에게도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평신도의 신학적 체계였지만, 그 체계 속엔 합리적인 체계, 즉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냥 막 감성적으로 여기는 이런 말, 저기는 또 저런 말을 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합리성은 치쁘리아누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합리성은 감동이 아닌 설득을 이룹니다. 치쁘리아누스는 떼르뚤리아누스의 논리에 상당 부분 설득 당하기도 하고 그리고 다투기도 하면서 그렇게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유스티노(Justinus, 약100-165)와 암브로시오(Sanctus Ambrosius, 약340-397) 그리고 아우구스티노(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철학은 신앙의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철학은 신앙을 합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신플라톤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는 그렇게 의심하는 자신, 그런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며 그 긍정 가운데 참된 진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아무리 속아도 속는 그 주체는 의심의 여지없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가 속는다면,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sum)”는 그의 철학적이고 신학적 명제는 이렇게 등장합니다. 지중해 연안 많은 철학자들인 의심하고 의심함으로 “나는 있다(ego sum)” 그리고 “나는 여기 실존한다(ego existo)”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훗날 데카르트를 보세요. 그는 갑자기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철학의 명제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자기 의심과 자기 물음의 결과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쉼 없는 반성적 사유, 그 사유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때서야 의심 할 수 없는 존재론적 토대 위에 철학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을 향한 걸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지요. 의심 할 수 없는 나의 존재, 그 존재의 존재론적 고향에서 많은 신학자들은 신, 즉 하느님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길을 걷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의 빛 때문이 아닙니다. 이상하고 기괴한 신비를 목적으로 하느님을 마주학 된 것이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묻고 묻고 또 묻고 그 물음에 생각전문가이고 고민전문가인 교부들은 답하고 답하고 또 답을 했습니다. 합리적으로 말입니다. 스콜라 철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은 서로가 서로에게 묻고 묻고 답하는 방식입니다. 그 근본은 스스로에게 묻고 묻고 또 묻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도 그냥 이것을 암기하라는 책이 아닙니다. 묻고 묻고 또 묻고, 그 물음에 이런 반론과 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다시 그 반론에 대한 이런 반론과 저런 반론을 다시 제기하는 그러한 책입니다. 답을 알려주는 책이라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혼돈 속에서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그 혼돈 속 고민에서 스스로의 답, 스스로의 신앙을 다져가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길에 합리성의 수단인 철학은 큰 몫을 합니다. 철학은 순수하게 이성의 산물입니다. 신앙으로 철학하지 않습니다. 스콜라철학자들에게 철학은 신앙을 의심하는 수단이며, 그 의심에 답을 합리적으로 내리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신, 하느님은 어떤 분이실까? 당장 누군가가 묻습니다. 그때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요? 우선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등장하는 부동의 원동자, 모든 움직이는 것을 움직이는 근원이지만, 스스로는 다른 것에 의하여 움직여지지 않는 그 부동의 원동자는 신앙 없는 누군가에게 혹은 신앙이 서로 다른 누군가에게 신이란 존재의 긍정을 이끌어내는 당시로는 아주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동의 원동자’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진 않았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혹은 이슬람 철학자들의 편에서 생각하면 『꾸란』에 등장하는 사람편에서도의 첫걸음 정도는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의 첫 걸음, 이성적 동물로 사람이 가지는 첫 걸음이란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편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계시의 그 하느님과 온전히 같지 않습니다. 하느님 그 자체는 사람의 언어와 생각을 넘어서는 초월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초월을 향한 이성적 동물로 사람의 이성적 첫걸음은 그렇게 합리적인 논리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질 뿐입니다. 이렇게 교부에서 스콜라 철학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람의 이해 노력, 즉 철학적 신학이 등장하게 되고 오랜 시간 유지되면 지금도 유의미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안셀무스(Anselmus Cantuariensis, 1033/4-1109)는 이와 같은 모습을 『프로슬로기온(Proslogion)』 서론에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ium)’으로 아주 명료하게 정리해 버립니다. 이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나름의 역사가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요한복음서 논고』에서 “이해하려면 믿으세요(crede ut intellegas)”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의 말은 누군가를 향한 가르침의 형태라면 안세무스에게 주어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이해하기 위해 나는 믿는다(Credo ut intelligam)”의 주어는 ‘나’입니다. 바로 자신을 향한 외침이고 다짐입니다. 타인을 향한 권고가 아닌 스스로에 대한 반성적 사유, 그 반성적 사유의 주체에 대한 외침인 것입니다. 안셀무스는 『프로슬로기온(Proslogion)』 1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믿기 위해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나는 믿습니다(Neque enim quaero intelligere ut credam, sed credo ut intelligam).”(PL, vol. 158, col. 227)

 

철학은 중세 신학자들에게 매우 유용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쉼 없이 합리적인 틀 속에서 의심하고 스스로의 의심을 타자로 두고 다시 그 의심에 대하여 고민하여 답을 궁리하였습니다. 나란 존재가 묻고 나란 존재가 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마련된 나의 답으로 남과 토론하며 우리의 답을 합리적인 틀 속에서 만들어갔습니다. 

 

이슬람의 철학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앞서 소개한 교부들이 혹은 스콜라 철학자들이 한 일들을 그들의 중세 철학자들이 한 것입니다. 알 파라비(al Farabi, 872-950), 이븐 시나(Ibn sina, 980-1037) 그리고 이븐 루시드(Ibn Rusch, 1126-1198) 등이 모두 그러한 철학자들이고 신학자들입니다. 

 

스콜라 철학은 이와 같이 신학에 쓸모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잘못인가요? 오히려 철학의 쓸모를 무시한 요즘의 신앙, 그 의심하지 않고 묻지 않고 답하지 않으며, 생각 없이 ‘천국을 향하여 현실을 무시하고 나아가는 신비’만을 강조하는 요즘의 비합리적인 종교가 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저의 강의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의 삶에 당당한 행복이 가득하길.

 

2020.03.17 유대칠 암브로시오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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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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