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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캄공책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2. 22.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신'을 안다. 정확하게 알지만 못해도 '신'을 아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을 이해하진 못한다. 무신론자도 신은 안다. 신을 모른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신을 이해하진 못한다. 신이란 것이 그저 사람들의 오랜 상상에 근거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면, 신은 처음부터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신을 알 순 있다. '안다'와 '이해한다'라는 말이 큰 차이를 가지지 않고 사용하는 이도 있기에 여기에서 논의의 상황 속에서 구분한다면, 대상의 존재 유무를 떠나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을 '안다'라고 한정하자. 하지만 이러한 것을 이해할 순 없다. 이해하기 위해선 대상을 경험해야 한다. '사랑'이란 말을 사전으로 안다면 아는 것이지만 이해한다고 보긴 힘들다. 이해하기 위해선 그 존재를 직접 마주해야 한다. '청룡'은 알지만 이해하진 못한다. '해태' 역시 알지만 이해하진 못한다. 아는 것은 엄밀하게 관념을 아는 것이다. 그 관념이 나의 의식 밖에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상관없다.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물리학과 같이 해태와 청룡을 연구하는 학문은 없다. 왜냐하면 물리 현상은 알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한다. 적어도 직접 안드로메다 성운에 갈 수 없어도 여러 사실들이 그 상황을 간접 경험하게 해 준다. 그러나 해태와 청룡은 그러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객관적 대상으로 의식 밖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알 수 있을 뿐, 그것 사이의 인과 관계를 따지고 들어갈 수 없다.

'떡국'을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은 같은 대상을 두고 일어 나는 의식의 행위이지만 엄밀하게 구분된다. 안다는 것은 엄밀하게 떡국이란 '말의 뜻' 혹은 '말의 정의'를 안다는 말이다. 떡국의 사진과 사전적 정의를 들은 떡국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도 떡국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 한다면, 그는 떡국의 '진짜 뜻' 혹은 '사실의 정의'를 알 순 없다. 그가 마주한 '떡국'이 사실이 아닌 관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인식한다는 것은 꼭 그것이 외부에 독립된 대상으로 있지 않아도 가능하다. 현존하지 않아도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의식 밖 독립된 대상으로 무엇인가를 직관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그런 대상을 두고 이해했다는 말을 쓰기를 어렵겠다.

유대칠

2021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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