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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캄공책

오캄은 철학자인가? 신학자인가?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3. 12.

질송은 '그리스도교 철학'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너무나 당연히 '그리스도교 철학'이란 말을 사용했다. 심지어 그는 중세 철학을 그리스도교 철학이라 규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브레히어와 브랑슈비크는 '그리스도교 철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질송은 그리스도교에서 이야기하는 계시의 요소들이 철학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포기를 커녕 오히려 철학과 통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말을 지지하였고, 그렇게 그리스도교 철학이란 말은 마치 당연한 것이란 듯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브레히어와 브랑슈비크 그리고 하이데거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여 년 전에 있었던 이 논쟁은 과연 철학이 무엇인가라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철학이 무엇이기에 그리스도교 철학이 가능하며 가능하지 않다는 말인가?

이 문제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겼다. 만일 질송의 이야기와 같이 중세 철학이 그리스도교 철학이라면, 그리스도교 철학으로 온전한 철학이라면, 그 철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만일 브레히어와 브랑슈비크와 같이 그리스도교 철학이 불가능한 이들에게 중세 철학은 무엇인가? 중세 철학이 그리스도교 철학이라면 그리스도교 철학이 불가능하다는 이들에게 중세철학은 철학이긴 한 것인가? 이 문제 역시 이후 심각하게 다루어졌다. 중세 철학은 과연 철학인가? 그리스도교라는 하나의 신앙 가운데 유의미하다면, 중세 철학은 보편적 지혜가 아닌 그리스도교 내부에만 작동하는 철학인가? 철학과 신학의 조화라는 이름 속에서 신학적 사유에 대한 고전 철학의 활용을 철학이라 한다면, 철학은 항상 신학과 같은 어떤 것의 시녀이기만 한 것인가? 중세 철학이 그리스도교 철학이고, 그리스도교에서 이야기하는 계시를 위한 합리적 도구라면, 중세철학은 적어도 독자적인 학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과연 철학은 이러한 학문이어야 하는가? 

질송의 생각과 달리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스스로를 철학자라는 규정속에 이해하기보다는 신학자라는 이름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신학자가 되려 했다. 지금의 시선에서 그들의 고민은 신학과의 고민이라기보다는 철학과의 고민과 교집합이 많아서 그들을 철학자라 부른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스스로를 신학자라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주해를 작업한 것도 순수한 철학적 이유라기보다는 신학의 예비학으로 수행한 것이었다.

지금의 눈으로 그들을 그리스도교 철학이라 부르며 다양한 논쟁을 하지만, 그들 자신은 자신을 신학자라 불렀다. 우리가 중세 철학이라 부른 것의 대부분을 그들은 신학이라 불렀다는 말도 된다. 아마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순수 철학이라면 De ente et essentia(존재자와 본질에 대하여) 정도겠다. Summa theologie(신학대전)이 매우 신학적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책은 신학 책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 책을 적은 것이지 철학책을 적은 것이 아니다. Summa contra gentiles(대이교도대전)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생각해보자.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그리고 보나벤투라에게 그리고 오캄에게 그리고 둔스 스코투스에게 자신의 일은 신학일까 철학일까? 지금 우리에게 그들은 철학자이지만, 과연 그들은 스스로를 철학자라 생각했을까? 

유대칠

2021 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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