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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리우스2

존재론 강의1 (2020.05.18) 영어로 be 동사는 '있다'의 의미를 가지지만 동시에 '있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둘이 하나의 단어 속에 녹아들어가있다. 그리고 품사도 동사다. 그러나 한국말은 그렇지 않다. '있다'는 실존의 여부에 대한 형용사이고, '이다'는 서술격 조사다. 이 둘을 하나의 단어로 묶어 낼 수 없다. 한국말이 그렇다. 지중해 사람들이 그 be 동사와 관련된 고민을 두고 ontology라고 한다. 우리는 이를 존재론이라 옮겨 읽는다 .그러나 존재라는 말은 실존만을 의미하지 지중해 사람들의 말 처럼 '이다'와 '있다'를 모두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니 언어말으로 생각하면 한국어는 지중해 연안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사유를 언어적으로 온전히 그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다. 한국말 어디에서 있다와 이다가 하나의 단어로 묶여있지.. 2020. 5. 18.
<형이상학> 읽기 1 유대칠의 바로 그 고전 - 형이상학 읽기 1 "모든 사람은 자연적으로 알기를 원한다. 그 증거로 사람은 감각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것의 쓸모를 떠나 감각 그 자체를 즐기며 그 가운데 다른 어떤 감각 보다 시각을 즐긴다. 실천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심지어 아무 것도 하려 하지 않아도 우리는 보는 것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좋아한다. 그 까닭은 모든 다른 감각 가운데 우리는 시각을 통하여 가장 많이 알게 되며 사물들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980a21-27)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말이다. 사람은 원래 알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근본적인 욕구란 말이다. 물론 성욕도 있고 식욕도 있다. 이것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부정할 수 없다. 수많은 이들이 이런 저런 길고 .. 2019.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