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강당학1 지독한 아픔은 지금도 그대로다. 그래서 지금도 희망을 품는다. "나봇 이야기는 옛날 일이죠. 그러나 지금도 매일 일어나는 일입니다. 날마다 다른 이의 것을 탐하지 않는 부자가 어디 있습니까? " (암브로시오, 1장1) 아프지만 사실이다. 친일파는 그때에만 있었나. 지금 친일파는 이름을 다르게 할 뿐 여전이 존재한다. 조선 시대에도 그랬고, 고려 시대에도 그러했다. 지구 곳곳에서 언제가 일어난 일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절망의 이야기인가? 어쩌면 절망을 그저 운명이나 원래 세상은 그러한 것이니 생각하고 그 절망을 자신의 일상으로 쉽게 받아드리는 것은 아닌가? 절망의 공간은 희망의 공간이다. 절망의 공간에서 그 절망을 벗어날 희망을 품는다. 절망은 희망의 터다. 전태일은 보자. 그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그토록 힘든 가운데 자신의 가진 작은 것도 나누는 그 사랑은 무.. 2019. 11. 1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