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란 있음이 그립다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씀
빈집
기 형 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1989년>
'아니 있음'에서 '있음의 간절함'을 마주한다.
'있음의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미 아니 있지만,
있는 듯이 나를 지배한다.
사랑은 '더불어 있음'의 순간보다 사라진 이후 더 강하게 그 있음의 향을 드러낸다.
나란 있음은 있어야 할 것의 아니 있음 가운데, 그 있음을 그리워하는 서글픈 '홀로 있음'이다.
철학의 시작은 이와 같다.
마땅히 있어야할 것에 대한 그리움,
나는 지금 나를 잃어버렸다. 나는 어디로 갔는가? 나는 나와도 더불어 있지 못하는 아픔이다. 이 아픔은 철학을 철학으로 만든다.
철학은 학문이란 고상한 누군가의 말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이전, 에덴 동산으로 부터 추장되던 날, 이데아계라는 진리의 세상에서 이 몸에 감금되어버린 날, 이미 운명 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나는 이미 있어야할 곳에서 버려졌으니 말이다.
나는 너와 이별하기 이전 이미 나는 나와도 이별했다.
우리는 나와 너로 살라지며 있어야 할 모습으로 떠나 버렸고,
나는 '착각의 나'와 '확신의 나'로 갈라지며 있어야 할 모습에서 떠나 버렸다.
무엇으로 있던 나는 아니 있다.
있지만 무엇으로 있는지 나도 모른다.
마주하는 그 무엇은 나에게 남이다.
나는 나에게 남이다.
나는 나의 있음이 그립다.
공포를 기다리는 흰 종이.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
나란 존재의 철학함이 되고 나의 본질이 되어 버렸다.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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