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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유대칠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1권 3장, 유대칠 한글로 옮기고 풀이. (일간유대칠 8호 2020.01.19)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 19.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1권 3장, 유대칠 한글로 옮기고 풀이.

유대칠 암브로시오 (오캄연구소) 번역 및 풀이

 

한글
1.3.3 그러면 당신이 하늘과 땅을 채워주신다면, 그것이 당신을 담겠습니까? 채운다 해도 당신을 담지 못하는 것이기에 남으실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채운다 해도 담지 못한 남은 것을 당신은 어디에 부으시렵니까? 모든 것을 채우고 있으신 당신은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당신이 채워질 필요가 없겠지요? 왜냐하면 당신이 그것을 채우시며 그것을 담으시며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채우는 그릇이라도 당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이 깨어져도 당신은 쏟기지 않으십니다. 설사 우리에게 쏟아진다 해도, 그로 인하여 당신은 엎질러지지 않으시고 우리를 세우십니다. 당신은 흩어지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모으십니다. 허나 모든 것을 채우신다 할 때, 전체적으로 모든 것을 채우십니다. 아니면 당신 전체를 모든 것이 담아내지 못하기에 당신의 한 조각을 받아드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것이 이 부분을 동시에 받아드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의 것을 하나의 것이 받아드리는 것입니까? 더 큰 것은 더 큰 것을, 더 작은 것은 더 작은 것을 받아드리는 것입니까? 그러면 당신에게 더 크고 어떤 부분이 있고, 더 작은 부분이 있단 말입니까? 아니면 당신은 전적으로 어디에나 계시며, 동시에 어떤 것도 당신 전부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요? 
라틴어
1.3.3 Capiunt ergone te caelum et terra, quoniam tu imples ea? An imples et restat, quoniam non te capiunt? Et quo refundis quidquid impleto caelo et terra restat ex te? An non opus habes ut quoquam continearis, qui contines omnia, quoniam quae imples continendo imples? Non enim uasa quae te plena sunt stabilem te faciunt, quia etsi frangantur non effunderis. Et cum effunderis super nos, non tu iaces sed erigis nos, nec tu dissiparis sed colligis nos. Sed quae imples omnia, te toto imples omnia. An quia non possunt te totum capere omnia, partem tui capiunt et eandem partem simul omnia capiunt? An singulas singula et maiores maiora, minores minora capiunt? Ergo est aliqua pars tua maior, aliqua minor? An ubique totus es et res nulla te totum capit?

하느님을 온전히 다 채울 수 있는 피조물은 없다.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하는 이들은 우선 의심해 봐야 한다. 그 자신이 당장 유한한 존재, 끝이 있는 존재인데, 그 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무한한 존재를 어찌 온전히 담아내겠는가. 그럴 수 없다. 하느님을 담아낼 피조물은 없다. 아무리 많이 담아낸다 해도 여전히 더 담을 것이 남은 그러한 무한한 존재다. 그를 어딘가에 담으려 노력한다 해도 어느 그릇으로도 그를 담을 수 없다. 그는 그 그릇은 안과 밖, 모두의 밖에 있으며 안이 있는 그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릇이 깨져도 흘러 내려 버리는 존재가 아니다. 무력해지는 존재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로 인하여 존재한다. 그는 존재하는 것의 모든 것을 지탱하는 존재다. 그 없이는 어떤 것도 없다. 지옥 역시 마찬가지다. 지옥은 악마나 마귀가 창조한 곳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 존재를 의존하고 있다. 하느님의 무한함, 바로 그것이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첫 걸음이다. 하느님을 흩어진 조각으로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무한한 하느님의 조각 가운데 하나이며, 사람은 그 한 조각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느님에게 다가갈수록 하느님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은 다가간 만큼 여전히 더 다가가야 할 무한한 존재다. 그럼에도 우린 하느님을 향해야 한다. 온전히 담기 위해서, 하느님을 담아낼 만큼 나 자신도 무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존재의 토대,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 있다는 사실 만으로 나와 더불어 있는 그 하느님, 그렇게 나 그 자체에 다가와 더불어 있을 만큼, 나의 존재가 그의 존재와 같이 있지만, 그 존재를 마주하지 못하고 부재를 경험하는 현실 속에서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 온전히 알 수 없지만, 온전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하느님의 무한을 향한 나의 유한이 부서져가며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여정이 신앙이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번역 풀이

202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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