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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교회사 읽기 (암브로시오 <성사론de sacramentis> 6, 11-16 발췌) 2020.04.18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4. 17.
여러분은 각자 비밀스러운 방을 하나씩 가지고 잇습니다. 바로 '영'입니다. 그 영이 여러분의 방입니다. 많은 이들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그 영 안에 닫혀진 채로 비밀스러운 바에 있습니다. 기도할 떄, 골방으로 들어가십시오. 주님께서는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유다인들 처럼 기도하지 마세요. 그들에게 주님은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한다지만, 그 마음은 나에게서 멀어져있습니다."(마태 15,8). 여러분의 기도가 단지 입술에서만 나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온 정신을 다해 기도하는데 집중하고 마음 깊이 그 기도 속으로 들어가보세요. (암브로시오 <성사론de sacramentis> 6, 11-16 발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다. 저마다 온전히 자신이 자신으로 있는 자신만의 비밀 방을 가지고 있다. 그 공간에서 그는 온전히 그이고, 나는 온전히 나이다. 어쩌면 그 가운데 각자는 닫혀있다. 나의 아픔은 온전히 나와 같이 아는 남은 없다. 그렇게 나의 방엔 오직 나만이 있다. 온전히 나로 그렇게 나 홀로 있다. 그 닫친 방 속에서 기도한다. 자신 속으로 깊이 깊이 내려가면서 기도한다. 그러나 이 말은 닫힌 방 속에 닫힌 영혼으로 그렇게 홀로 닫힌 채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홀로 있음이 우리에게 어찌 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라면, 그 가운데도 쉼 없이 우린 더불어 있음을 궁리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 방에서 나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기 참 좋다. 이 세상 이런 저런 이야기들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 분심들게하는 것들, 귀 막아야하는 것들, 그런 것들일지 모른다. 그 모든 힘든 이야기에 귀를 닫고 홀로 자기 성공과 평안 그리고 행복을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해서 불안하고 외롭다. 홀로 있음의 어쩔 수 있는 존재의 드러남이 바로 그 불안이다. 이 세상 어쩔 수 없이 홀로 있는 것이라며 그렇게 홀로 열심히 남을 이기고 살아갈 방법을 궁리하고 노력하는데, 앞서 나아가는 만큼 불안 역시 찾아온다. 그냥 그 방에서 그는 그렇게 홀로 죽어간다. 외롭고 힘들게 말이다. 그 불안이 커지면 커질 수록 해결하기 위해 더 욕심을 내고 더 화를 내고 더 짜증을 낸다. 그래도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냥 혼자 외롭다. 암브로시오는 그 방에서 혼자 죽어가라하지 않는다. 가난한 이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부자가 되기 위한 우리의 욕심에 대해 얼마나 화를 낸 분인가 말이다. 결국 우린 그 방에 들어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말로는 사랑이라 하면서 그냥 바람에 날리는 소리일 뿐, 사실은 자기 욕심과 평안을 위한 신앙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고 돌아보란 말이다. 교회와 성당을 명상원 처럼 생각하고 와서 명상을 원한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돌아보란 말이다. 결국은 실천이고, 그 실천은 결국 사랑이다. 그 방에 들어가 이기적인 자신을 쉼 없이 돌아보고 돌아보아야 한다. 실천하기 위해 말이다.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말이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202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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