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지 않았고,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거절하였네."(욥기 22,7)
"배부른 자는 꿀도 짓밟아 버리지만 배고픈 자에게는 쓴 것도 모두 달다."(잠언 27,7)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고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신앙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주지 않을 핑개를 찾지 않는 것, 이런 저런 조건 속에서 주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이다. 가난한 이의 아픔 앞에서 사치를 부리며, 기본적인 생활도 힘든 이들 앞에서 자기 과시를 하는 것이 자랑이 아님을 아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의 기본은 부끄러움이다. 목마른 이와 배고픈 이의 그 아픔 가운데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나의 소유가 부끄러운 것이 신앙이다. 소유가 아닌 공유를 위하여 있을 곳으로 자기 자신 것을 돌리는 것이 신앙이다. 사치의 자랑이 아니라, 있어야 한 곳, 가난으로 아픈 이들의 그 아픔으로 자기 소유가 돌아가야 그것이 신앙이다.
돈 더 벌기 위해 거짓 소문을 내는 이라면 성당과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여전히 자기 가운데 악마성을 가진 존재다. 자기 소유를 위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교묘한 거짓으로 자기를 합리화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실력이 아니라,. 자본에 종속된 자유 없는 영혼의 사악한 아집이다. 그 아집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에게 다가갈 수 없다. 아니, 하느님까지 갈 것도 없이 제대로 된 사람이 되지도 못한다.
목마른 이의 아픔, 배고픈 이의 아픔 그 아픔 안에서 부끄러워해야 한다.
작디 작은 것에 만족하며, 그 사소한 것으로 달다며 하느님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
신앙의 첫 걸음이겠다.
우리 가운데 너의 아픔이 나의 소유 탓이다. 내 욕심이 우리 가운데 너를 아프게 하고, 우리로 부터 나를 멀어지게 한다. 하느님 품으로 부터 나를 멀어지게 한다. 그렇게 나는 하느님과 너의 남이 된다. 남으로 살게 된다. 홀로 말이다. 주변 사람이 그리 많아도 나 자신이 아닌 나의 소유를 보고 모인 이들이니, 사람이 많아도 외롭다. 나를 소외되고 소유물이 그들의 봇으로 나를 대신에 그들에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나는 너로 부터, 그들로 부터 그리고 하느님부터 부터 모두 남이 되어 버린다. 홀로 있게 된다.
물마른 이에게 물이 되고 배고픈 이에게 밥이 되는 삶, 그것이 신앙이다. 그 신앙은 나를 우리 가운데 있게 한다. 우리 가운데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듯이, 우리 가운데 나의 아픔 역시 너의 아픔이 되게 한다. 서로가 홀로 아프지 않게 한다. 더불어 있는 바로 그곳, 그곳에서 나와 너는 우리가 되고, 그 우리의 자리에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로 우리와 더불어 울고 웃고 있으실 것이다. 정말로.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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