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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초월'이란?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8. 22.

하느님은 누군가의 하느님으로만 계시지 않는다. 그들만이 하느님을 독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자신들만 하느님을 독점한다면서 자신들과 다른 모든 이들을 악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하느님 이름으로 우리를 분열시키고 그 가운데 몇몇은 바로 그러한 분열됨을 이용해 권력과 부유함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그런 분열의 주인공들이 대체로 악마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자신의 이기심을 종교의 언어로 화장한 사악한 악마 말이다. 그런데 그 악마를 천사인듯 옹호한 것도 교회라는 것을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다.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자기 도피처로 숨는 것도 분열이다. 결국 우리의 일이다. 같이 분노해야한다.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한다.

나에게 '초월'이란 '벗어남'이다. 지금 '나'와 '우리편'이란 아집에서 벗어나 나와 너의 경계의 무력화 속에서 우리를 이루며 나도 너도 온전한 주체성, 서로 다른 차이 조차 안으로 서로의 아픔을 남의 아픔으로 밀어내지 않는 그런 안아줌, 그 안아줌을 위한 나와 우리편이란 한계를 벗어남, 그것이 나에게 초월이다. 저 세상만을 생각하며 이 세상 부조리의 일등공신이 되는 것은 초월이 아닌 아집이며, 흐르지 않은 물이기에 썩기 마련이다. 썩지 않기 위해서라도 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와 너의 주체성은 쉼 없이 변화하며 우리 가운데 서로가 서로에 의존해 있어야 한다. 나만 답이라는 아집은 결국 그것이 욕망의 표현이든 이론의 표현이든 썩기 마련이다.

죽은 신학자의 글에 자신의 영혼을 사로 잡혀 사는 것도 지금 이 순간 아픔에 우는 이들의 눈물에선 흐르지 않은 썩은 물이거나 그저 지금은 일상 속에서 쓰지 못한 골동품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학자도 학자 자신의 한계, 그 끝을 쉼 없이 초월해가야 한다. 욕망으로 자신을 한정하는 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그 욕심으로 다른 이들을 이용하고 악을 행한다. 천국 간다는 욕심에 이웃에게 병을 나르고 거짓을 말하는데, 그것이 무슨 희망이겠는가!

도려내야 한다. 그냥 두면 썩을 우리의 모습이다. 초월은 바로 그 도려냄으로 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유대칠 20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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