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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101호실

종교는 마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아라! 이 현실을!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9. 26.

종교는 마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아라! 이 현실을!

: 중세 유럽의 아픔을 통해 본 참된 신앙과 신비란?

 

 

그럴 때가 있다. 차라리 모든 것이 거짓이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보이는 것은 눈물이며, 느껴지는 것은 슬픔뿐일 때가 있다. 그때 삶은 그냥 아픔이다. 몸의 아픔은 약으로 치유되지만, 마음의 아픔은 약도 없다. 그땐 모든 것이 거짓이면 좋겠다 싶다. 차라리 보이는 모든 것이 가짜이면 좋겠다 싶다. 그럴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 2009년이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님께서 두 다리를 수술하셨다. 성공적인 수술이 끝나고 멀지 않아,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두개골 골절, 얼굴 안면 골절, 발목 골절 등으로 1년 동안 7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했다. 

 

치료가 거의 끝날 무렵, 아버지께서 암 판정을 받으셨다. 내가 입원한 입원실 맞은 편 옆 입원실에 입원하셨다. 아버지의 암수술이 잘 되고, 이제 모든 것이 다 잘 해결되었다고 싶을 무렵이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딸아이가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내가 입원한 입원실 맞은 편 입원실에 내 딸이 입원했다. 잔혹한 시간이었다. 누굴 원망할지 모를 그런 원망을 했다. 모든 것이 가짜이면 좋겠다 싶었다. 현실이 미웠다. 그럴 때가 있었다. 

 

중세 유럽이 그랬다. 아니 중세 유럽은 나의 그것보다 더 잔혹했다. 눈에 보이고 살로 느껴지는 모든 것이 가짜이면 좋겠다 싶었을 것이다. 충분히 동감한다. 여자들은 출산 중 죽어갔다. 손을 쓸 수 없었다. 혹시 무사하게 아기를 출산한다 해도 현실은 잔혹했다. 많은 경우, 부모는 아기를 직접 죽였다. 제한된 농산물을 가지고 도저히 늘어나는 인구를 버틸 수 없었다. 

 

실재로 9세기 유럽의 한 지방법엔 유아에 대한 부모의 살해가 법적으로 허용되었다. 합법적으로 자식을 죽였다. 어머니는 직접 아기를 다리 아래로 던져 버렸다. 때론 목을 졸라 죽이기도 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남녀의 성비가 인위적으로 조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 인구가 증가하면 여아(女兒)의 출생이 줄어들었다. 슬픈 역사이지만, 여아는 조절의 대상이었다. 여아는 다리 아래로 남아보다 더 많이 버려졌다. 이것이 일상인 공간이 유럽의 중세다. 부모가 자식을 죽였다. 그것도 먹고 살기 위해 말이다. 그렇게 아픈 살인을 저지른 바로 그 날 저녁 부모는 성당을 찾아 고해성사를 했다. 

 

교회가 이러한 출생률의 인위적 조절을 종교적으로 금지하기 전까지 잔혹한 살인은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설화(說話)에 따르면, 인간 존재의 처지를 비참함으로 표현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를 위해 로마에 산토 스피리토(Santo Spirito)를 1204년에 걸립했다고 한다. 그래도 수많은 아이들이 묘지도 없이 버려졌다.

 

살아남은 남아의 일생라고 해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 귀족이 아니면 대부분 농사꾼의 삶을 살았다. 허락된 식량에 비해 주어진 노동량을 너무나 과했다. 결국 신체의 저항력은 급격히 떨어지곤 했다. 그렇게 농사꾼 다수가 폐결핵으로 죽었다. 어찌하여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의료 수준은 처참했다. 돌림병이 돌면 막을 길이 없었다. 그저 모두 죽어 사라지길 기다렸다. 

 

흑사병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이 모든 것을 피했다고 해도, 중세의 삶은 결코 안락하지 않다. 지금 그들이 세계의 패션을 이끌어 간다지만, 그때는 달랐다. 추위를 막을 옷도 없었다. 그냥 천을 하나 몸에 두를 정도였다. 여성이라 해도 속옷조차 없었다. 11세기와 12세기에 와서 비잔틴의 영향으로 약간의 옷 장식이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때쯤에서야 재단사가 등장했다. 

 

집도 거의 오두막 수준이었다. 지금 남아있는 성(城)과 수도원으로 당시 민중의 삶을 생각해선 안 된다. 천장 연기구멍으로 겨우 들어오는 빛으로 살아가는 오두막 정도였다. 아직 유리(琉璃)가 전해지지 않았으니 유리창을 기대할 수 없다. 

 

침대 역시 다르지 않다. 그냥 점토 바닥에 짚을 깔고 잤다. 많은 유아들은 부모에게 깔려죽기도 했다. 영화에 나오는 멋진 유럽의 중세는 상상일 뿐이다. 스스로 자식을 죽이고, 아내의 죽음을 보아야하는 곳,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운다는 것도 막연한 세상, 이것이 유럽의 중세다. 

 

학문적 사색보다 ‘생존’의 공포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성 엠머람의 오틀로(Otloh von St. Emmeram) 수사(修士)는 신의 분노란 생존과 관련된 악천후, 굶주림 등이라고 했다. 그가 생각한 신의 은총 역시 추상적이지 않다. 상당히 현실적이다. 풍작, 평화, 집을 지키는 개, 쥐를 잡는 고양이 등이다. 이 역시 생존의 문제다. 

 

풍작으로 쌓을 것이 있고, 전쟁이 없어 죽지 않아도 되는 것 그리고 개가 인간 도둑으로부터 지켜주고 고양이가 동물 도둑 쥐로 부터 지켜주는 것이 신의 축복이라 했다. 생존이 공포로 다가오는 시대, 신의 은총이란 생존이었다. 교회 역시 소득의 3분의 1 혹은 4분의 1을 구호 활동에 사용했다. 교리(敎理) 교육이나 친교(親交)는 그 자체로 배부른 이야기였다. 생존해야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서양의 중세, 그것은 생각만 해도 잔혹한 시대다. <인간 처지의 비참함에 대하여>(De miseria conditionis humanae)라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의 책이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300년 동안 읽히고 읽혔다. 

 

인노켄티우스 3세는 이 책에서 인간이란 더러운 먼지와 역겨운 냄새의 정자(精液)로 만들어진 존재라 했다. 사라져야 할 육체의 쾌락과 정욕, 그 천박한 욕구의 결과물이 인간이라 했다. 생명 탄생의 시작 자체가 쾌락의 산물이며, 힘들게 살아가다가 결국 죽게 되는 존재가 인간이라 했다. 

 

인간은 결국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셈이다. 이미 인간의 생명이란 존재 자체가 죄와 정욕으로 오염된 역겨운 존재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은 절대 행복할 수 없어 보였다. 그것이 당연해 보였다. 

 

신의 사랑을 받으며 존재한다고 생각하기에 현실은 너무나 잔혹했다. 그 처참한 처지는 신의 자녀라기보다는 차라리 죄인이며, 그 삶도 죄인의 형벌이라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였다. 인간의 삶은 그저 살아가는 공간이라기보다 죄 값을 치루며 버텨야하는 ‘감옥’으로 보였다. 

 

이야기가 길었다. 

 

종교는 이러한 인간의 비참한 처지, 잔혹한 현실에 가뭄의 단비다.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거의 모든 것이 아픔이고 슬픔이던 시대, 종교는 아픔이 아닌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종교는 잔혹한 처지 속에 보이기만 하는 그것이 아니라, 정말 보아야할 것을 제시해야 했다. 보이는 것은 십자가의 수난과 같은 잔혹한 현실이지만, 보아야할 것은 그 고난의 자리가 구원의 시작이라 했다. 잔혹한 현실도 죄인의 형벌이 아닌 희망을 향한 노력의 공간으로 볼 수 있다 했다. 희망을 가져라 했다. 

 

당시 지식인들은 이 잔혹한 현실 앞에 무엇이라도 이야기해야 했었다. 이렇게 실재론(實在論)이 등장한다. 플라톤의 철학을 좋아하는 이들이 주류로 등장한다. 자세한 실재론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겠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보이는 것’이 아닌 ‘보아야할 것’에 더 중점을 두었단 사실이다. 분명히 눈에 보이는 현실은 처참하다.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가 아니다. 플라톤은 감각하며 느끼는 이 모든 것이 ‘진짜’가 아니라 한다.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면, 진짜의 ‘모조품’이나 더 심하게는 ‘가짜’다. 

 

플라톤은 가짜에서 행복의 근거를 찾지 말자고 한다. 이 가짜는 실망과 아픔만을 줄 뿐이다. 이러한 가짜를 목적으로 살순 없다. 설사 얻는다고 해도 그 행복은 가짜일 뿐이다. 오히려 정말 추구해야 할 것은 이상향, 즉 ‘선의 이데아’다. 

 

감각의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영혼으로 보아야하는 그 이상향이 진짜다. 그것만이 진짜 행복을 줄 수 있다. 우리에게 진짜처럼 다가오는 아픔, 쾌락, 권력, 기쁨, 슬픔... 이 모든 것이 진짜가 아니다, 이러한 것으론 참된 행복을 이룰 수 없다. 

 

참된 행복은 오직 초감각적 이데아를 향하여 나아갈 때만 가능하다. 그것만이 진짜 행복이다. 교회도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을 수용한다. 플라톤의 옷을 입은 교회는 힘들어 지친 민중을 위로했다. 

 

잔혹한 현실 가운데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삶의 진정한 목적을 제시한다. 비록 힘들고 지친 삶이지만, 그러한 현실을 넘어서는 초현실적 이상향을 목적으로 삼으로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성으로 결단하며 살아간다면, 신은 결코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신앙, 스콜라신학이 등장한다. 

 

‘신앙의 빛’으로 주어진 그 이상향을 향하여 ‘자연의 빛’을 따라 이성으로 고민하고 결단하며, 힘들게 살아가다가 죽는다고 해도, 그것은 진짜 죽음이 아니라 했다. 오히려 참된 생명의 길이라 했다. 죽음으로 보일 뿐, 진정 보아야할 것은 생명이라 했다. 힘겨운 현실 속 희망 없이 살던 이들에게 이러한 실재론은 어떤 의미에서 희망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삶의 공간은 여전히 생존의 공포로 가득했다. 교회는 지친 영혼을 위로해야 했다. 그러나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민중의 불안 심리를 이용했다. 미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병이 생기고 죽게 될 것이라 겁을 주었다. 영원히 살고 싶으면 믿으란 식이다. 

 

이러한 신앙은 결국 생존을 위한 신앙일 뿐이다. 당연히 기복신앙(祈福信仰)이 된다. '기복신앙'은 ‘생존’이란 현실적 욕구에서 시작하는 신앙이다. 자신이 마주한 현실 속에서 노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비한 능력에 의하여 주어지길 바라는 것이 기복신앙이다. 기복신앙은 항상 엉성한 가짜 신비와 공존한다. 

 

이러한 신비와 기복신앙을 따르는 이들은 자신이 마주한 현실을 보지 않는다. 또 이러한 신비를 강조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현실을 아예 보지 말라 한다. 현실적 사회 문제에 침묵하라 한다. 그것이 신앙이라 한다. 그런 지도자들은 현실에 대한 침묵과 함께 신비를 강조한다. 그렇게 현실에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민중은 비현실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다.

 

실재론이 잘못 활용된 경우다. 실재론은 보이지 않는 이상을 추구하라 했다. 이는 신비 속에 숨어 버리란 말이 아니다. 이 현실의 아픔에서 고개 돌리라는 말도 아니다. 참된 실재론에 따르면, 인간은 순례자다. 

 

신앙이 제시하는 그 여행의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이성으로 고민하며 싸우고 때론 괴로워하며 나아가는 그 여행의 과정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 여정을 무시하고, 오직 이상향만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활용이다. 

 

당시 13세기 대표적인 실재론 철학자인 알베르투스 마뉴스(Albertus magnus)는 1257년 학자의 말인 라틴어가 아닌 민중의 말인 독일어로 대중에게 한 설교한다. 그러면서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란 <마태오 복음> 5장 14절을 풀이한다. 

 

그에 따르면, 지상에 구현된 천국은 성당이나 수도원이 아니라, 시장(市場)과 같은 도시의 대광장이다. 부자의 경제적 활동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했다. 오히려 그들의 부유함을 잘 활용하라 했다. 그 무렵, 도시로 가난한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난의 공간이 되어가는 대도시의 광장에서 부자들의 부유함을 잘 활용하는 것, 즉 현실의 아픔을 없애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그러기 위해 부자들의 부유함도 그저 거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잘 활용해야한다고 했다. 그들 역시 더불어 있음에 있어 나름, 하느님의 뜻이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성에 구현된 천국은 성당이나 수도원이 아닌 도시의 대광장이라 했다.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신앙이란 말이다. 그러니 현실을 피하지 말라 했다.

 

알베르투스 마뉴스의 제자인 엑하르트(Maister Eckhart)는 현실을 벗어난 비이성적이며 비현실적인 신비를 올바른 신비로 보지 않는다. 그의 신비는 매우 이성적이며 신앙적이다. 수난 신비나 관상만을 강조하며 살아갈 경우, 어쩌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인간 자신의 현실적 존재를 보지 못할 수 있다. 더불어 있어야 할 지금 여기 수많은 외로운 고통의 밖에서 홀로 외로이 있게 될지 모른다.

 

엑하르트는 인간 자신의 존재를 보라 했다. 하느님은 멀리 우리와 떨어진 곳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존재와 매우 긴밀하게 하나 된 그러한 존재다. 그는 이러한 신비 신앙을 단지 지식으로만 두뇌에 담아 두진 않았다. 그는 민중을 위한 독일어 설교를 통해 소리쳤다. 

 

하느님은 대학의 학자들이나 수도원의 수도자 그리고 성당의 성직자만이 독점하는 존재가 아니다. 신은 어느 누군가에게만 독점적으로 주어진 그러한 존재가 아닌 대자연과 우리의 순수한 이웃들에게도 모두 동일하게 머물러 있는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하나 된 그런 존재다. 

 

그의 이러한 신비사상에 따르면 참된 신비란 수도원에서 이루어지는 명상과 수행뿐 아니라, 민중의 삶, 즉 현실이란 공간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능하단 말이다. 이성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자신의 존재 내면으로 들어가면, 어느 순간 그 이성을 무력화되는 지점에서 이성만으로 담을 수 없는 신을 마주한다. 이 신, 이러한 하느님은 우리의 외부가 아닌 우리 안에 있다. 

 

아쉬운 일이다. 실재론자인 알베르투스 마뉴스와 엑하르트의 외침은 쉬이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교회는 민중을 겁주며 비현실적 신비주의를 강조했다. 이러한 신비주의는 유지할 재원(財源)도 생각하지 않은 수도원과 성당 건축으로 드러났다. 

 

그뿐 아니라, 탁발 수도회의 과도한 활동에 대해 교회 내부에서 조차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과한 금욕과 기복신앙의 대상이 되어가는 성체(聖體)와 성물들에 대해서도 서서히 다른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현실의 아픔이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럽고 가짜이길 바랄 정도라도 우린 분명 그러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단 사실이다. 그 현실에서 고개 돌리는 신앙과 종교는 절대 바른 신앙과 종교가 아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협박함으로 교세를 확대하는 종교도 바른 종교가 아니다. 진정한 신비는 이러한 현실을 도피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비는 고개 돌림이 아니다. 종교는 현실이란 공간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약(痲藥)이 아니다. 인간은 현실 속에서 생각하며 현실의 고통을 넘어서는 이상향을 향해 이 현실 가운데 싸우며 살아야 한다. 

 

현실에서 고개 돌리고 오직 초현실적 이상향만을 고집스럽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 현실이 아프니, 이 현실에서 고개 돌리고, 초월적 신만을 관상하며 있는 것이 참다운 신비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란 공간을 피하기 위해 사용되는 마약일 뿐이다. 

 

종교는 마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종교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현실을 마주하고 있어야 한다. 아파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 종교다. 그런데 그 아픔이 느껴지는 공간은 초현실적 공간이 아니다. 바로 현실이다. 

 

그렇기에 종교는 무엇보다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현실 속 아픈 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세 교회는 더욱 더 현실에서 고개를 돌리고 더욱 더 비이성적이고 비현실적인 신비만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실재론이란 틀 자체에 반기(反旗)를 든 유명론자(唯名論者) 피에르 다이이(Pierre d.Ailly) 추기경과 그의 뒤를 이어 파리대학 총장이 된 장 제르송(Jean Gerson)은 이러한 사실에 분노했다. 

 

유명론자는 보편이 아닌 눈에 보이는 개체에 집중한다. 그들에겐 어쩌면 보다 더 눈에 보이는 현실이 더 잘 보였을지 모른다. 사실 유명론자들은 더욱 더 경험 사실에 집중하려는 면이 있다. 그러니 더욱 더 현실의 문제에 집중하려는 면이 있을 수 있다. 

 

유명론자들에게 근거 없는 신비는 그저 미신일 뿐이다. 장 제르송은 신비주의자다. 제르송은 잔혹한 현실을 살아가며, 오직 희망을 천상에 두고 있는 민중에서 혹시나 주어질지 모를 지옥행에 대한 공포를 활용한 신비만을 강조한 교회에 반대했다. 

 

이러한 가짜 신비는 ‘오직 인간의 환상과 공상적 우울에서 나온 것’(ex sola hominum phantasiatione et melancholica imaginatione)일 뿐이라 했다. 미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시각 장애인이 되거나 병에 걸리게 될 것이라는 공포를 조장하며, 성체를 기복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도 분노했다. 

 

여전히 중세 민중들에게 현실은 잔혹했다. 배고프고 춥고 병들어 죽어가는 시대였다. 구원의 확신이 절실했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신자를 모르는 교회에 분노했다. 하지만 그의 시대 이미 많은 신자들은 비현실적 신비에 더욱 더 집착했다. 

 

또한 교회는 점점 기복종교(祈福宗敎)화 되어가고 있었다. 교회는 이상향을 향한 안내자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마약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제르송의 스승인 피에르 다이이는 <교회의 개혁에 대하여>(De reformatione ecclesiae)를 1409년에 쓴다. 

 

그는 필요 없이 늘어난 축제와 신비주의에 쌓인 과도한 조각상과 이미지들에 분노했다. 지나친 금욕과 긴 성무일과 그리고 근거 없는 문헌들과 기도문들이 미사에 도입되는 것에도 분노했다. 하지만 다이이와 제르송의 분노도 힘을 쓰지 못했다. 

 

현실은 잔혹하다. 잔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민중에게 신학과 철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미래를 향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잔혹한 처지에 빠진 인간에게 실재론은 가뭄의 단비였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단비를 단비로 그치게 했다. 싹이 나지 않았다. 이에 분노하며, 현실을 보라고, 거짓된 신비주의와 교회의 욕심에 분노한 유명론자의 분노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현실에 고개 돌린 신앙! 이것은 구원의 길이 되지 못한다. 현실에서 고개 돌렸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현실은 현실이다. 여전히 아프고 힘들어하는 현실이다. 그곳에서 고개를 돌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21세기 여전히 현실은 잔혹하다. 나에게도 그렇다. 여전히 어머님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신다. 나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오늘도 친구의 어머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어제는 네팔에서 수많은 이들이 생명과 집 그리고 가족을 잃었다. 작년 세월호의 비극으로 가족을 보낸 이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진실을 알려 달라 소리치고 있고, 많은 이들은 그들을 조롱하기도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기도 한다. 지중해 연안엔 과격 단체에 의한 대규모의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중세도 잔혹했고, 지금 21세기 우리도 잔혹했다. 이렇게 잔혹한 현실 앞에서 울고 있는 눈물 앞에 종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죽어서 갈 천국에 대한 찬양을 하며 현실의 아픔에서부터 고개 돌리게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일까? 지금 아파 죽어가는 이의 그 아픔에 고개 돌리는 것이 종교일까? 

 

종교가 위로하고 안아주어야 하는 곳, 종교가 빛으로 존재해야할 곳은 탈현실인가 아니면, 아파하는 이들이 어두움 속에 괴로워하는 이 현실인가? 종교가 정말 안아주어야 하는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눈앞에 있는 바로 이 아픔이 아닐까? 

 

이 아픔에 고개 돌리고 성전에게서만 신을 찾을 때, 그리고 신비라는 이름으로 현실에서 고개 돌릴 때, 신은 어쩌면 거기 없을지 모른다. 오히려 그들의 앞에 보이는 신은 그들이 원했던 가상의 신일지 모른다. 

 

진정 참된 신은 아파하는 이의 눈물을 닦아 주며, 함께 울어주는 우리의 모습 가운데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신비일지 모른다. 누구도 인간 대접 해주지 않은 나병환자의 아픔 앞에 형제라며 안아주는 그 신비,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돌을 던진 이들 앞에선 창녀의 아픔 앞에 형제라며 안아주는 그 신비, 어쩌면 신비란 그렇게 현실 속 아픔에 대한 우리의 공감과 사랑에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어쩌면 더욱 더 현실의 아픔을 향할 때, 더욱 더 우리는 신에게 다가가며 신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21세기 여전히 이 세상은 슬프다. <인간 처지의 비참함에 대하여>라는 책의 제목은 여전히 우리를 울린다. 여전히 또 다른 이 시대의 엑하르트와 다이이 그리고 제르송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교회는 하늘 높이 올라가고, 종교 지도자들은 현실의 고통 앞에 고개 숙이거나 고개 돌리고 있다. 빛으로 존재하면 어둠에서 속 빛을 찾는 이들은 빛을 향하여 모여든다. 종교는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어둠 속 빛을 찾는 이들은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현실에서 빛이 되어야 한다. 빛은 현실 속 빛이어야 한다. 예수는 천상에서 어둠을 피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이 현실이 어둡기에 내려오신 것 아니겠는가? 

 

충분히 어둡다고 고개 돌리지 않고, 현실의 아픔을 잊는 마약으로 있지 않으려면, 더욱 더 현실의 아픔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 더욱 더 빛을 낼 때, 이 시대의 또 다른 엑하르트, 다이이 그리고 제르송의 분노는 사라질지 모르겠다. 

 

중세에도 지금도 종교는 마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숨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종교가 할 일이 아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가톨릭프레스 연재 글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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