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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신비주의에 대하여... 2020 08 28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8. 28.

신비주의...내가 쓴 학부 학위 논문을 가지고 졸업 전... 한 교수 신부님에게 보여 준 적이 있다. 그때 그 교수 신부님은 몇 일이 지나 나에게 이런 논문은 학부 논문이 아니라 석사 학위 논문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하셨다. 쿠사누스의 철학이 가지는 중세 철학와 근대 철학의 요소와 쿠사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비주의를 비교하며 당시 쿠사누스에 대한 이런 저런 해석에 대하여 나름의 해석을 제시한 논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대학 4학년은 나름 치열했다. 그 논문의 일부는 에크하르트에 대한 것이었고 이 부분은 훗날 에크하르트에 대한 나의 논문으로 한 학술지에 투고되었다. 신비주의에 대한 나의 해석은 대체로 학부 시절에 시작하여 석사 학위 논문 이후 정립된다.

신비주의란 이성을 벗어난 것을 두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탈이성이 아니라, 이성의 한계 인식 속에서 이해하는 편이 좋다. 결국 신에 대한 인간의 온전한 인식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 이론의 구성 자체는 합리적이다. 그래야지 신학이나 철학과 같은 합리적 이론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론이 지향하는 마지막은 그 이론 자체를 넘어서는 어떤 것, 그 이론으로 만난 하느님에 대한 표현 자체는 언어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며, 언어 자체, 즉 이성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 하느님을 향한 것이며, 그것은 욕심과 생각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란 것 까지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인간 이성의 끝에서 가장 하느님에게 가까울 만큼 하느님에게 가까워지면 보이는 것은 무경계의 경계다. 나와 너는 다르지만 하나다. 자칫 신비주의는 혼자서 하는 자위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험한 세상에 혼자 도사 노릇하면서 지내는 것, 그것을 지식인들은 멋지다며 다가가 배우기도 하고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영웅이 되면 더 영웅이 되어야하기에 더 이상한 기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된 신비주의는 무경계의 경계 속에서 나와 너의 하나됨을 마주하고, 그 본 모습을 위하여 나와 너를 나누고 위계를 만드는 세상으로 다가가 위계를 부수는 투사가 된다. 그러니 신비주의는 벽보고 신선 노름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의 세상을 마주하며 싸우러가는 투사와 같은 도사가 되는 것이다.

 

2020 08 28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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