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aṃ mayā śrutam(에밤 마야 슈루탐)
불경은 이렇게 시작하곤 합니다. 사실 많은 불경은 강의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야심경은 관자재보살이 설법주입니다. 강사란 말이죠. 그가 자신의 철학을 우리에게 강의하는 겁니다. 불경은 일종의 강의노트와 같습니다. 강의한 것을 기록한 거죠. 요즘 같으면 녹취 프로그램으로 바로 문자화했을 건데 말이죠. 저의 수아레즈 강독 강의는 그렇게 기록하고 있거든요. ㅎㅎ 그런데 저의 강의를 문자화해도 그것 읽고자 하는 이는 없죠 ㅜㅠ 그런데 싯다르타의 강의도 관세음보살의 강의도 기억되고 기록되어 지금도 읽힙니다.
강의에 함께 한 이가 강사의 말을 기억합니다. 듣고자 하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은 학생이라면 강사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리는 대로 그대로 기억하고 기록하려 하겠지요. 수동적으로 말입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은 듣고 아닌 것은 듣지 않으면 제대로 된 좋은 학생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불경은 이렇게 시작하니다.
evaṃ mayā śrutam
흔히 한문으로 如是我聞(여시아문)이라 번역되고 우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혹은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라고 번역되어 읽힙니다. 여기에서 '들었다' 혹은 '들었습니다'는 능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도 있고 자기 욕심에 따라 왜곡되어 들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인지 산스크리트어는 수동 구문입니다.
evaṃ은 '이처럼'이란 말입니다. mayā는 1인칭 대명사, 즉 '나'입니다. 영어의 'I'이지요. śrutam는 '들리어졌다'입니다. 수동이란 말입니다. 아마 한문으로 이런 수동을 번역하기 힘들어 그냥 능동으로 번역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수동입니다. 우리가 어떤 고전을 읽을 때 종종 읽고 싶은 대로 읽기도 합니다. 읽고 싶은 대로 읽지 않으려 해도 우린 우리의 주관 속에서 읽을 것이니 어느 정도 우리의 마음대로 읽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제대로 된 고전 읽기는 그 고전에 담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을 들리는 대로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비록 번역된 고전을 읽는다고 해도 마음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귀를 열고 최대한 들리는 뜻을 들어야 한단 말이죠. 그렇게 듣고 나서 스스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 들린 말을 두고 고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들으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말로 조금 편하게 번역하면 "이처럼 저에게 들렸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혼자 생각입니다. 산스크리트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놈이 무슨 말이냐. 함부로 비난하거나 조롱하진 말아주세요. 저보다 더 똑똑한 사람 많은 세상이라 이런 저의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참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별 것 아닌 사람이라도 요즘 저는 불경을 마음을 위해 읽어봅니다. 읽고 나면 참 좋아요.
20살 때입니다. 대구 어느 서점에서 산스크리트어 문법책을 하나 사서 공부했는데 아직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제대로 배워야 하는데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 말이죠. 그러나 반야심경을 산스크리어로 힘겹게 읽고 훈련소 들어가기 전 혼자 흐뭇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대칠
<대한민국철학사>와 <신성한 모독자> 그리고 <일반형이상학입문> 등의 저자이며, 라틴어로 쓰인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의 <감추어 계신 하느님에 대한 대화>를 한국어로 번역한 역자이기도 하다. 광주 시민자유대학에서 중세 철학과 고전을 강의했으며, 경향신문의 시민대학에서 중세철학을 강의했다. 또 청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를 위한 철학을 강의했으며, 대구 소방본부에서 논리학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대학에서 10여 년간 글쓰기와 인문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한국방송 인문학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였고, 경향신문과 한겨례 등에 철학자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철학사와 고전 그리고 고전어를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에서 강의하고 있다.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실 분들은 적은 금액이라도 정기적으로 비정기적으로 혹은 일회적으로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위로의 철학 강좌'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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