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해도 할 권리가 있다.
이번 어느 복싱 대회에서
도전자는 이긴 경기보다 진 경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진 경험이 많지 않은 이에게 도전했다. 시작하고 얼마지 않아 그는 다운이 되었다. 엄청나게 많이 맞았다. 사실 링에 올라 남의 주먹에 허용된 구타를 당해보면... 막상 그 자리에선 아프지 않다. 이겨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그런데 끝이 나면 무지하게 아프다. 그도 그랬다. 엄청나게 일방적으로 지고 있었지만 마지막 진전까지 그의 눈은 상대방을 향한 주먹을 노리고 있었다. 결국 그는 졌다. 나는 그를 응원한다. '잘' 하지 못해도 그는 그 링의 그 순간이 행복할 거다. 그것이 바로 그이기에 말이다.
함부로 능력주의니 뭐니 남을 판단하지 말자.
'잘' 못해도 할 권리가 있다.
대단한 화가 아니라도 그림을 그릴 권리가 있고
대단한 철학자 아니라도 철학을 할 권리가 있다.
오히려 그들을 조롱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들의 실체적 본질을 두고 함부로 꼰대짓 할 권리도 없다.
누구도 그런 권리는 없다.
유대칠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팔 아프고 근육 여기저기가 아파도... 지는 경기라고 상관없다.
2022년 7월 5일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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