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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

유대칠과 함께 하는 철학 이야기 1. 철학과, 철학과, 결국은 더불어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11. 24.

유대칠과 함께 하는 철학 이야기

 

1. 철학관? 철학과? 결국은 더불어!

 

철학? 사실 이름만 들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알 길이 없어요. 그죠. 길을 걷다가 보면 ‘철학관’이란 곳을 어렵지 않게 봅니다. 흔히 ‘점’을 보는 곳이죠. 그러면 철학은 점을 보는 기술인가요? 그렇다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점술가인가요? 공자도 맹자도 점술가인가? 철학은 점을 보는 기술이 아닙니다. 사실 동아시아 철학의 대표적 경전인 <주역>이 본래 점을 보는 책이란 것은 사실이지만, 철학은 점을 보는 기술이 아닙니다. 주술적으로 손바닥에 ‘왕(王)’이란 한자를 적으면 왕이 될 것이라는 주술적 생각을 하는 곳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철학은 그러한 주술적인 것과는 참 많이 다릅니다. ‘이성’으로 매우 합리적으로 궁리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러니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는 논리학과 관련된 책도 많이 적은 것입니다. 철학은 감성에 빠져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성적으로 따지고 따지는 이성의 행위, 바로 그것이 철학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흔히 길을 걷다 보게 되는 철학관이나 주술의 공간과는 사실 무관합니다. 저도 25년 철학을 했지만 남의 점을 보거나 주술적 행위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대학엔 ‘철학과’가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인기 있진 않죠. 졸업을 해서 이 사회에서 무슨 쓸모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비인기 학과죠. 지금 한국의 대학들 가운데 철학과 없는 대학은 아주 많습니다. 기존의 철학과가 사라져 가는 중이기도 합니다. 철학과가 사라진다고 크게 우리 사회가 슬퍼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사실 여러분도 대학에 철학과가 있다고 큰 영향을 받은 적은 잘 없죠. 그런데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요. 서점에 있는 철학책이란 책을 읽었다고 삶이 큰 영향을 받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철학이 중요하다는 말은 여기저기 나돌지만, 막상 철학의 쓸모가 여러분의 삶에 다가온 적은 거의 없단 말이죠. 당연합니다. 사실 저도 그래요. 저는 목사(牧師)가 되기 위해 철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지리교육학과에 합격했는데, 어차피 목사 아니면 공무원 할 것이니 철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 입학해야 하는데 그전에 철학을 배우면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말이죠.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읽은 불교철학 서적들은 왠지 철학이란 학문이 상당히 매력적일 것이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철학과에 입학하니 정말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게 뭐지? 정말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3월은 그냥 그렇게 보내다가, 그래도 시간이 아까우니 책이라도 읽자는 마음에 대학도서관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아마 다닌 대학도서관의 철학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다 읽었을 것 같습니다. 거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말이죠. 사실 1학년이 무슨 이해를 했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그냥 막 읽으면 답답한 마음에 도서관 철학 사전의 도움을 청하기도 하였고, 그렇게 책을 읽어갔습니다. 그런데 재미있었습니다. 이곳이 공익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개인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책도 그렇고 니체의 책도 그렇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세히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특히 쇼펜하우어의 책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라틴어를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로 착각하고 배우러 가게 되고, 그 이후로 중세철학책을 읽어갔습니다. 살짝 미친 것인지 몰라도 중세철학도 재미있었습니다. 이 역시 공익적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었습니다. 지금도 유럽의 중세철학이 지금 한국 사회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쓸모가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재미있었고 그래서 그냥 철학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사실 목사가 될 생각이 살짝 있어서 중세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신학의 담론도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철학사 공부는 그냥 지식을 얻어가는 재미였습니다. 지혜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철학 고전을 읽어가면서 그곳에 담긴 그 시대의 철학적 지혜를 읽으며 나름 좋은 훈련이 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은 했습니다. 남의 철학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서 철학을 생산하는 철학자가 됨에 있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철학과의 철학은 지식을 익혀가는 과정으로는 나름 유익했지만 사실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 이상의 과정, 즉 철학을 생산하는 과정은 또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철학이 일구어지는 또 다른 차원은 ‘삶’입니다. 삶의 공간입니다. 사실 공자나 소크라테스는 자신들이 살아간 삶의 공간에서 제자 혹은 벗과 대화하며 철학을 일구어갔습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답을 더불어 만들어간 것이죠.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은 그냥 책 속에서 책을 이해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정의가 부족한 사회 속에서 그 부조리 혹은 결핍의 공간에서, 그러나 삶에서 등장한 것이란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그러한 고민은 논문을 쓰기 위함이 아니라,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식을 궁리한 것이죠. 정의로움이란 단어를 풀이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의로운 삶을 위해 궁리했단 말입니다. 그것도 더불어 대화하면서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철학과에 구속되어있는 철학이 아닙니다. 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철학도 아닙니다. 살아가기 위한 철학입니다. 어쩌면 그에게 철학은 삶의 방식입니다. 결국 삶이 되어야 할 것에 대한 궁리였던 것입니다.

 

이웃과 더불어 자식의 교육 문제에 대해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그렇게 삶 속에서 주고받은 대화의 공간, 바로 그 공간 속에서, 우린 삶에서 벗어나지 않은 철학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봅니다. 삶 속에서 느낀 어떤 결핍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 주체가 되어 궁리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어떤 유명한 철학 교수의 훈계가 없이도 바로 그 삶 속 공간이 철학의 순간입니다. 그리고 철학자의 자리는 바로 그곳이어야 합니다. 소크라테스라는 철학자가 이웃과 더불어 답을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생각하게 요구하는 철학자가 되었듯이 말이죠. 대학 철학과에서 양성된 철학자도 결국 그 철학자의 철학이 뜻을 품기 위해선 바로 이곳, 삶에서 이웃에서 뜻으로 다가가야 하겠지요.

 

철학의 공간은 철학과도 아니고 철학과도 아니며 결국은 바로 더불어 있음의 자리입니다. 이웃과 더불어 있는 가운데 이웃에서 뜻으로 다가가는 철학, 바로 그런 철학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살아있는 철학이라 생각해 봅니다.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유대칠, <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홀로 외로운 시대, 홀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불행한 시대, 정말 제대로 행복한 것을 무엇인가를 예수의 <주님의 기도>와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한 묵상 모임집이다. 더불어 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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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모두가 홀로 누리며 홀로 높아지려는 시대, 그 아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아프고 힘든 시대, 참된 더불어 행복하게 위한 더불어 있음의 철학과 더불어 있음의 신학을 궁리해 본다. 우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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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 땅에서 우리말 우리글로 역사의 주체인 우리가 우리 삶과 고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한 결과물이 한국철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변방에서 중국을 그리워하며 한자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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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신성한 모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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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철학자 13인이 일으킨 파문과 모독의 일대기를 다룬 『신성한 모독자』. 중세에서 이단이란 그리스도교 외부에 있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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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일반 형이상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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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철학의 과정>

 

철학의 과정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논리는 왜 철학에 필요한가 그리고 존재론과 철학적 신학에 이르는 간단한 개론적 사색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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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야고보와 요한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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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보고서>와 <요한1서>를 통해 더불어 있음의 신학적 의미를 돌아보려 한다. 신은 이런저런 복합한 형이상학적 이론으로 파악되어 우리 사람의 머리 속에서 생명력 없는개념으로 구속되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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