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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101호실19

가난한 이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 신앙의 첫 걸음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분노 가난한 이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 신앙의 첫 걸음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분노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였듯이 여러분도 서로를 사랑하세요.” 예수의 부탁이다. 정말 어렵다. 우린 이유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유를 찾는다. 만족시킬 외모나 돈 아니면 권력이나 지식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움직인다. 예수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이유 없이 사랑했다. 어떤 유익도 없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했다. 우리도 우리를 예수와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예수가 우릴 사랑하듯이 우리가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예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고개 돌리며 내 일이 아니라고 했을까? 가난한 장애인의 죽음 앞에서 내 일이 아니라 했을까? 세월호.. 2019. 9. 26.
아프고 가난한 이의 옆에 작은 빛이 되어라! 그것이 신앙이다.- 치쁘리아누스의 분노 아프고 가난한 이의 옆에 작은 빛이 되어라! 그것이 신앙이다.- 치쁘리아누스의 분노 "돈이면 다 해결된다." 참 슬픈 상식이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이다. 이런 슬픈 세상에서 돈 없고 권력 없는 이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법과 권력 앞에 작기만하고, 종교의 눈길에선 멀어져 버린 가난한 우리 이웃들은 어찌 살아야하는가? 이미 오래 전부터 정의(正義)를 말하는 법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의 논리를 대변할 뿐이었다. 가난한 이를 향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종교 역시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빠져 아픈 이의 울음을 듣지 않는다. 어찌 보면 법도 종교도 스스로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는 자의 자리에 있을 뿐, 아프고 힘든 가난한 자의 눈물을 보지 않았다. 더 슬픈 것은 이것이 당연한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 2019. 9. 26.
가난한 이를 탓하지 마라! 우리 신앙이 게으른 탓이다! - 암브로시오의 분노 가난한 이를 탓하지 마라! 우리 신앙이 게으른 탓이다! - 암브로시오의 분노그럴 때가 있다. 그냥 남 탓이라 돌리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조금의 죄책감보다 그것이 편할 때가 있다. 참 이기적일 때가 있다. 먹먹한 풍경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있었다. 한 손엔 이불로 쓸 종이 상자를 꼭 잡고, 그렇게 버려진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어디에서 주워 입었는지, 바지는 너무 길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윗옷은 여성용이었다. 그렇게 서서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진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먹먹했다. 처음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고, 그 역겨운 것을 먹기 시작했을 때,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먹먹해졌다.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힘든 것을 먹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그냥 게으른 인간이라고, 도와줄 필요 없는 게.. 2019. 9. 26.
손 내밀자. 가진 것도 아픈 것도 분노도 나누자. 그것이 신앙이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분노 손 내밀자. 가진 것도 아픈 것도 분노도 나누자. 그것이 신앙이다. :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분노 ‘나의 것’이 아니면, 돌아보지 않는다. ‘나의 분노’가 아니면, 그저 잡음일 뿐이다. ‘나의 아픔’이 아니면, 그저 남의 아픔일 뿐이다. 그냥 나 ‘아닌’ 남의 분노이고, 남의 아픔이다. 그토록 쓰라린 세월호의 아픔도 마찬가지다. 그저 남의 아픔이다. 슬픈 이야기지만,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 아픔에서 나온 분노도 그저 남의 분노일 뿐이기 때문이다. 병마(病魔)를 이기지 못한 노부부가 함께 자살한 소식을 접한다. 누구도 손 내밀지 않았다. 그냥 남의 아픔이다. 남편이 죽고, 힘든 몸으로 폐지를 수집하며 생활하다 병마는 더 깊어지고, 자식도 연락을 끊어 버린 할머니가 생존을 위해 성매매의 길에 들어서고.. 2019.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