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있음'의 좋음
'더불어 있음'은 하나뿐인 좋음이 아니다. 나누어진 둘의 좋음도 아니다. 둘이 하나 되어 좋음이다. 그것이 참된 좋음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좋을 순 없다. 그 홀로 됨의 끝엔 외로운 죽음 뿐이다. 그러나 세상이란 원래 홀로 뿐이라 믿는 이들이 있다. 자식도 어쩔 수 없는 짐이고 배우자도 짐이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자신과 같은 이상을 가지지 않으면 그저 짐이다. 다름과 같이 있는 것이 힘겨운 일이다. 더불어 있음의 좋음은 하나로 통일된 좋음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둘이 서로 다른 둘로 만나 행복합니다. 나와 다른 취향과 모습으로 행복한 그의 열심이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이와 요리사를 생각해 보자. 농사를 짓는 이의 까닭은 좋은 농작물이다. 요리를 하는 이의 까닭은 좋은 음식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르다. 이 서로 다름이 모여서 음식 먹는 이의 기쁨이 된다. 이때 농사를 짓는 이와 요리하는 이 그리고 음식을 먹는 이, 이 서로 다른 셋은 서로 다른 셋으로 좋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 서로 다른 까닭이지만 한 자리에서 더불어 좋게 된다. 모두가 농사만 짖는다면, 좋은 요리를 없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기뻐하는 이도 없다. 차이, 그 다름이 서로 흩어지게 함이 아니라, 서로 무시하고 조롱하지 않는다면, 결국 한 자리에서 더불어 있음의 좋음을 이루게 된다.
좋음은 더불어 있음의 개별자들에 밖과 안에 있는 초월적인 것이다. 더불어 있음으로 있는 농부와 요리사 그리고 음식을 먹는 이 각각의 안에도 좋음이 있지만, 동시에 이 둘을 하나로 좋게 하는 각각의 있음 밖에 있지만, 동시에 이 모두를 하나로 더불어 좋게 하는 밖의 좋음도 있다. 그러니 그 밖의 좋음은 안의 좋음과 남으로 있는 밖이 아니라, 안과 밖 모두를 안으며 좋은 그러한 초월적 좋음이다.
나의 좋음은 너의 좋음을 마주하며 다가온다. 나의 안에 있는 좋음은 너의 안에 있는 좋음을 만나면서 나와 너를 흩어진 따로가 아닌 하나로 더불어 좋음으로 들어간다. 그 더불어 좋음에서 나와 너는 우리가 되어 서로가 서로의 웃음에 이유가 된다. 이런 삶이 아니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불행의 이유가 된다. 너의 성공에서 나의 초라함만을 본다면, 나는 너에게서 나의 불행을 본다. 너는 내 불행의 이유다. 더불어 있지 못한다. 너의 성공에 더불어 웃지 않는 나는 너에게도 좋지 않은 무엇이 된다. 역시나 더불어 있지 못한다. 그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더불어 있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흩어진 여럿은 남보다 더 행복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너와 다툰다. 우리를 파괴하고 너를 남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나를 홀로 있게 한다.
좋음 음식은 각자의 재료가 각자 안에 가진 각자의 맛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각자의 좋음을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밖 또 다른 좋음을 마주해야 한다. 그때 더불어 하나 되어 좋음이 된다. 두부는 두부로 좋음을 유지한 채로 된장과 양파 등의 좋음을 만나야 한다. 나의 좋음이 너의 좋음을 만나, 각자의 안에 있는 작은 좋음은 서로 만나 더 큰 좋음을 이룬다. 두부의 좋음과 된장의 좋은 그리고 양파의 좋음은 각자가 각자 안에 좋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 좋음은 된장찌개의 좋음과 다르다. 그러나 이 각자의 좋음이 더불어 있을 때, 된장찌개의 좋음이란 또 하나의 새로운 더불어 있음의 좋음, 하나로 좋음이 이루어진다. 두부와 된자 그리고 양파의 안에 있는 좋음은 그렇게 그들 좋음의 밖의 좋음을 이룬다. 그러나 그 밖의 좋음은 그 가운데 있는 각자의 좋음의 온전한 밖이 아니라, 안을 감싸며 밖에 있는 그러한 좋음이다.
더불어 있음의 좋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하는 모습이다. 싸우는 주체성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주체성의 근거가 되는 상호주체성 속 행복의 근거가 된다.
더불어 있음의 좋음, 그 좋음이 다툼과 분열의 자리, 우리에게 희망의 길이 될지 모른다.
더불어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음의 씨앗이 되어야 한다. 희망은 나의 안에서 시작해 나의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의 만남에서 시작하여 우리로 꽃피는 것이다.
유대칠 씀
2020/01/20
더불어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희망은 나의 안에서 시작해 나의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의 만남에서 시작하여 우리로 꽃피는 것이다. 딸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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