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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유대칠

그는 그래도 그렇게 살겠단다. (일간유대칠 12호 2020 01 30)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 30.

그는 무척 가난한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돈 없는 부부에게 산부인과는 먼 곳이었다. 하지만 의료인의 도움없이 허망하게 죽은 첫 아이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겨우 생각한 것이 보건소였다. 그는 그렇게 보건소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에 전기를 소비하는 것은 백열등과 라디오 뿐이었다. 연탄불에 난방과 조리를 해결했고 방이라고는 그후로도 한참을 단칸이었다.
아비는 무능했다. 형이 죽으면 갑자기 첫째가 된 그는 사랑 받지못하고 살다 의무만 커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 의무란 것을 담아낼 능력이 없었디. 열심히 교회를 다녔지만 그를 기억하고 그의 편이 되는 이는 없었다. 믿는 이들 마다 가난한 그에게 사기를 쳤다. 다쓴 원고가 다른 이의 이름으로 제법 잘 팔리는 것을 보고도 제대로 다투기 보다는 포기에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나이든 아비는 누구도 믿지않는 무능한 화쟁이 할배가 되었다. 그러나 그 화도 그리 힘이 없다. 어미는 약했다. 어미는 어미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외로움에 익숙했다. 무능한 아비가 놀때 어미는 생계를 책임졌다. 그러다 사고를 당하고 장애인이 되었다. 그렇다고 달라지지않았다. 나이 많아진 아비는 배려를 배운 적이 없었다. 배울 마음도 없었다.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는 화 많은 노인을 걷지 못하는 그는 책임져야했다.
그 역시 아비만큼 사람 운이 없었다. 20대까지 선생으로 만난 이들은 그를 무시하기를 즐겼다. 종교로 만난 교우들도 다르지 않았다. 무시를 즐겼다. 그가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있을때도 사람들은 그에게 하지못한 알바비를 돌려달라 수차례 전화했다. 이후 수술 중에도 그는 알바를 해야했다. 수술 사실이 알려지면 알바를 하지 못할까 걱정하면 거짓말로 건강한듯 교통사고 이후의 시간을 보냈다. 하루 14시간 알바를 하려 30대를 보냈다. 그 사이 친구들도 모두 멀어졌다. 아니 같이 웃기 좋아하던 이들은 지워지고 눈물을 나누는 이들만 남았다 해야겠다. 그는 일박의 여행도 다녀 본 적 없었다. 아이들과 생애 첫 일박 여행을 한 전주는 그에게 고마움이었다. 일박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시급알바 20년은 그에게 교통사고 후유증과 이런 저런 병을 남겼다.
거리에 나가 촛불을 들어야할 시간에도 그는 알바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로 대체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랜 알바는 그에게 이런 말을 입에 남겼다. 기계적으로 나오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친구에게 250만원을 빌리고 하던 알바를 정리하고 다시 대학원을 시작했다. 그는 그 돈 250만원을 해결하지 못해 일년일 떨며지냈다.
세상없던 친구도 수백만원의 술자리를 자랑하던 친구도 250만원 앞에선 무서운 고문 전문가였다. 그런 그에게 사람은 무엇일까...
그를 괴롭히던 목사와 신부 그리고 교우들은 어떤 의미일까...
그와 떡뽁기에 값싼 맥주를 나누며 통영 바다 어느 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은 그에게 대부분 절망이었다. 단 한번도 갑이 된 적 없이 명령 내리기보다 명령 받고 그에게 평가되고 조롱되던 삶이다. 그의 열심은 항상 조롱꺼리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사람이 결국 마지막 그의 희망이었다. 그를 괴롭히는 이들은 부지런히 괴롭혔지만 어느 순간 한번씩 선물처럼 다가오는 인연에게서 그는 힘을 얻었다. 조롱에 익숙해지고 그냥 이게 나다 생각하는 것이 편해질 무렵 한번씩 찾아온 희망은 그를 다시 살게했다.
그 역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자 한다. 나에게도 그리고 그대에게도 말이다. 돈을 내어주는 희망은 아니지만 권력이 내미는 지혜성 희망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는 자기를 있게하는 대부분의 조각은 바로 그 희망이라 믿고 산다. 그리 당해도 그에게도 희망은 크고 큰가보다.
오늘 불신시대를 쓴 박경리의 마지막 쉼의 자리를 찾았다. 불신시다. 사람에게 희망보다는 서글픈 눈물을 당연함으로 마주하게 되는 세상에서 나는 그리고 그는 다짐한다. 나는 그대에게 희망이고 싶다. 간절히. 간절히.

2020 01 30
통영에서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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