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철학의 시작은 ‘지금 여기의 긍정’이다. 삶의 긍정이고 역사의 긍정이다. 바로 여기 무엇인가 끝없이 부족한 결핍의 공간에 대한 긍정이다. 함석헌은 외적 초월이 결국은 민중을 무시하는 데로 이어질 것임을 알았다. <대한민국철학사> 359쪽
지금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항상 더 많은 것을 보면서 무엇이 더 없는지 지적 당하는 삶을 살았다. 과거 적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것을 해결해야하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버려졌습니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항상 누군가의 입만 보고 살았다. 지적 하는 입, 너는 이렇게 부족하다는 입, 너는 온통 부족하다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모역하는 입, 그 입만 보고 살았다. 그 입에서 나온 것을 답이라 생각하면 삶은 조금 편했다. 그래서 그 입이 답이 되었다. 그 입은 초월적 존재다. 이 현실의 고난과 아픔 그리고 눈물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 볼 수도 없다. 봐서도 안 된다. 그 모든 현실의 밖, 현실의 남이다. 그곳에 그 입이 있다. 그 입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입은 신이었다. 때론 부모의 입으로, 때론 사장의 입으로, 때론 독재자의 입으로! 그렇게 그 입은 변신하며 여기 저기 나타나 명령하고 조롱했다. 그리고 그 입 앞에서 우린 지금 여기, 나의 공간을 거부한다. 부정한다. 당연히 부족한 공간이라 생각해 버렸다. 어쩌면 입의 밖에서 입의 머슴으로 살아가는 존재, 주체성 없는 존재, 그저 있을 뿐, 무엇으로 스스로 결단하여 있지 못하는 존재. 입 앞에서 무엇임을 명령해 달라 기다리는 존재, 그런 존재일 뿐이다.
우린 비도덕적인 입을 향하여 제대로 분노하지 못했다. 우리 역사의 얼마나 많은 상처가 그 입으로 인하여 있었는가? 그런데 우린 그 입을 동경하며 산다. 아이들에게 입이 되라 한다. 공부의 이유도 입이 되기 위해서다. 돈이 유일한 행복이 아니라면서 돈 없는 불행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부모, 입을 찬영하며 입이 되라는 부모, 작은 지금 이 순간 서로 더불어 있음의 행복보다 불행의 요소를 찾아 우울해야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부모, 결국 이런 부모들이 있는 공간에서 불행은 일상의 상식이 될 것이고, 행복은 이 땅에 없는 어떤 것일 뿐일지 모른다. 행복이 없는 곳에 살아가는 그 처지는 불행 뿐이다. 더 불행한다 덜 불행한가로 고민할 뿐이다.
지금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배우려 말고 스스로 고민해서 스스로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 뜻을 이루려는 이들과 더불어 말이다. 자신의 노력을 지적질하며 무시하는 이의 모슴이 될 것이 아니라, 자신을 결국 우울하게 만들 독약을 보약으로 마실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단하여 살아야 한다. 그러면 길이 보일 듯 하다. 정말로 말이다. 생각보다 가까이 나와 더불어 행복할 이들이 이미 와있을지 모른다.
자기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이의 입 앞에서 홀로 울지 마라. 이미 당신의 옆에 더불어 당신과 있는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 일상의 순간, 가장 가까이 그 희망의 터에 이미 당신은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유대칠 (오캄연구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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