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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유대칠

나 역시 오답이다. (일간유대칠 2020.04.14)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4. 14.
"너의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8장 7절)

나 역시 오답이다. 그냥 나에게 정답으로 보이는 그 무엇을 고집하며 산다. 그 고집 밖에 대해선 때론 제법 잔인하다. 무지하다 욕하기도 하고, 미개하다 무시하기도 한다. 결국 나의 생각, 이 작은 틀 속에 들어와야 한다. 내가 아는 너만이! 내가 허락하는 너만이! 무지하지도 미개하지도 않다. 이런 생각에 아무런 악의 없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조롱한다. 그저 자신의 작은 그 고집 속에 없다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비난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은 그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는 나름의 안심일지 모른다. 나는 비난하는 사람이지 비난 받는 사람은 아니라는 이상한 그 시간 동안의 안심 말이다. 

살아가며 가장 많은 것을 주입 받는 것은 학교이 선생님도 아니고, 유명한 책도 아니다. 사실 부모라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 많은 것이 자식에게 남겨진다. 그런데 우린 일제 시대를 걸치면서 그 이후 냉전과 독재 시대를 지나면서, 강자의 눈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을 교육이라 여기며 살았다. 창의적인 것은 강자에게 불편하다. 그래서 당장 지금 필요한 지식을 달달달 암기할 뿐,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지는 못하는 이들을 양성했다. 그러면 강자는 그 기준으로 비난하고 조롱하고 결국엔 필요 없다 했다. 사실 공부란 것은 암기가 아니다. 암기란 승부욕 강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좌우를 가린 도서관 자리에 앉아서 앞에 제법 무서운 구호를 적고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달린다. 그렇게 달려가서 결국 이루려는 것은 강자에게 쓸모 있는 무엇이 되는 것이다. 그것 뿐이다. 부모는 자식 앞에 강자가 되어 그 정해진 기준으로 아이들에게 분노했다. 왜 그런지? 왜 그것이 답인지? 부모도 모른다. 그냥 그것이 답이라는 답이다. 그리고 그 답을 지켜야 한다. 그것으로 자신이 힘들었지만 그것만 있으면 그만이라며 앞으로 달려가라 자식을 괴롭힌다. 꽃 한 송이의 아름다움과 시원한 바람의 따스함을 느껴야 할 나이에 아이들은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누군가를 이겨야하고, 결국 그것으로 얻을 것은 돈이며 권력이란 것을 부모에게 배운다. 그리고 스스로 돈과 권력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치고, 그것이 행복의 유일한 기준이란 듯이 말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런 부모는 돈도 권력도 없다. 결국 자녀는 어느 정도의 포기를 배우기도 하고, 부조리 뿐인 세상에 대한 경험하지 않은 조소로 가득해진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아이들과 네잎 클로버 찾기를 하면 아이들은 땅에서 올라오는 생명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이런 저런 벌레들에 웃기도 한다. <창세기>의 순간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좋다 하셨다. 이 세상은 아름답다. 아이들의 눈에 이 세상은 그렇다. 아름답고 신기하다. 그러나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지만, 자녀는 '부모의 모상'이다. 자녀는 스스로가 되기 전에 부모의 생각과 시선이 된다. 슬프게도 그렇게 자신을 지우고 부모의 시선 속에서 세상을 본다. 그런데 결국 그 부모도 슬픈 세상 속에서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살아서 그것이 익숙해서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사랑...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는 보면서 자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내가 너 때문에 고생한다거나 너로 인하여 이런 수고를 한다는 말을 나의 아들과 딸에게 하지 않기도 다짐했다. 나에게 어떤 부채의식도 가지지 않아도 된다. 고생을 한다 해도 그것은 빚이 아니다. 나의 시선 속에 있지 마라. 그냥 너는 너가 되어라. 나는 나대로 정답이고 나는 나대로 오답이다. 이 오답을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오답이다. 이 오답을 너의 정답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나의 생각은 과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너의 생각은 앞으로 살아간 미래에 대한 더 큰 희망으로 가득하길 바란다. 나 역시 그러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과거에서 만들어진 고정된 변하지 않는 슬픔들이 너의 희망의 디딤돌이 되게 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참고서일 뿐, 나의 과거는 정답이 아니다.

지금 하는 너의 일에 집중해라. 그것말고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그냥 너는 너가 되어라!

자식에게 부모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때, 자식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 실망시킬 수 없으니 부모의 모상으로 있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말이다. 

교육, 나에게 교육은 이런 저런 지식이나 외국어가 아니다. 스스로 자기 희망에 솔직해지고 그 희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면 그만이다. 나의 경험으로 그것만 가진다면 외국어도 이런 저런 지식도 얻을 수 있다. 

오늘 나의 다짐은 이것이다. 나도 오답이다. 오답을 강제하지 않는다. 

나 역시 오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작디 작은 머리로 생각한 정답을 고집하고 있는 고집쟁이일 수 있다. 그 작은 고집으로 누군가를 죄인이라 비난하고 누군가를 미개하다 조롱하면서 말이다. 아니다. 그런 고집이 나쁜 것이다. 나도 오답이다.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너는 너의 길을 가라! 나도 그냥 나의 길을 가겠다.

유대칠 

20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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