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 살아가는 이곳은 결핍의 공간이다. 그러나 함석헌은 그 비워진 공간을 빛이 없는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빈 맘에야 밝음이 있다고 한다. 빛은 그 자체로 충만하고 완전함을 의미한다. 그 빛은 제한도 없고 차별도 없어야 한다. 그런 빛이어야 참다운 빛이다. 그런데 빛은 빛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오히려 빛이 아니다. 빛으로 가득 한 공간에선 빛이 빛으로 있지 못한다. 빛을 너라고 불루줄 수 있는 곳, 빛이 뜻을 품을 수 있는 곳은 오히려 빛이 비워진 곳이다. 자기 이성과 자기 욕심으로 가득 채워진 곳에서 타나는 '나' 아닌 '남'일 뿐이며, 때론 '나'와 싸울 '적'이다. '나'의 외부에서 찾아오는 '빛'은 '남'이거나 '적'이다. 다투어야 한다. '나'란 존재는 지거나 이기거나다." <대한민국철학사> 361쪽
돌림병이 돌고 있는 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나' 밖 '남'으로 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다. 혹시나 그 더러운 손이 나를 스칠까 장갑에 손소독제를 들고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런데, '남'의 밖 '너'는 '남'에게 더려운 무엇일 수 있다. 오히려 그에게 나도 모르는 나의 독이 전해질지 모른다. 남은 어쩌면 경계의 대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적이 아닌 내가 조심해야 하는 벗일지 모른다. 그로 인하여 나란 존재가 아플 수 있지만, 그 역시 나로 인하여 아플 수 있다. 충분히 말이다.
거리감의 이유를 생각한다. 거리감의 이유는 너에 대한 조심 속에서 더욱 더 단단히 있으려는 우리인가? 아니면 너를 향한 나의 경계이고 적대감인가? 하나됨인가 아니면 분열인가? 더불어 있음인가 홀로 있음인가? 불안 속에서도 누군가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 것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운 21세기 이 시대의 부처이고 남을 위해 자신의 고난을 기꺼이 받아드리는 이 시대의 예수다. 마스크를 나누고 쌀을 나누고 라면과 반찬을 나눈다. 심지어 자신의 돈도 나눈다. 기꺼이 달려와 자신의 의술로 봉사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가운데도 남의 아픔이나 불안을 생각하지 않고 여행을 자가 격리를 어겨가며 자기 마음대로 여기 저기 다니는 이들도 있다. 과연 우린 누구를 우리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은가? 아마 후자로 우리를 기억하려는 이들은 우리 스스로를 이기적인 존재, 자기 밖에 모르는 존재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런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 이 세상에 대한 관념은 자신의 이기적인 삶 조차 적당히 합리화시킬 것이다. 세상은 원래 그러한 것이라고 말이다. 전자로 우리를 기억하려는 이들은 우리를 우리로 기억하려 할 것이다. 너와 더불어 있는 나, 그 더불어 있음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생각하려 할 것이다. 나의 편리 속 타자의 아픔은 나의 악행으로 기억할 것이다.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어둠이라면, 모두가 이기심으로 가득한 그런 공간이라면, 우리 스스로는 더욱 더 간절히 빛을 열망해야 한다. 어둠 속에선 타자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느껴지는 나의 욕망 뿐이다. 그 욕망의 부름을 따라 보이지도 않는 길을 마치 너무나 자명한 길이라도 되는 듯이 간다. 어둠 속 눈을 감고 서로 충돌하고 싸우며 그렇게 살아간다. 머리가 터지도록 서로 싸워가면서 말이다. 빛의 공간은 그냥 눈을 뜨면 된다. 눈을 뜨면 나의 욕망보다 더 선명하게 나의 앞에 '너'가 보인다. 나의 충돌로 아픈 너가 아니다. 너의 눈물이 보이고, 같이 울고 있는 우리가 보인다. 눈을 뜨면 그만이다. 어둠이라 포기하지 말고 빛을 희망해야 한다. 눈을 뜨고서 말이다.
마스크를 쓴다. 오늘 그냥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 눈을 뜨고 마스크를 쓰자.
유대칠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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