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쟘」 「라이너․마리아․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박이문은 자신의 철학을 둥지의 철학이라 부른다. 새들은 마른 풀잎과 지푸라기 등을 가져다 둥지를 만든다. 서로 다른 이곳저곳에서 모은 것으로 정교하게 둥지를 만든다. 박이문에게 철학함이란 바로 이런 중지 제작 작업과 비슷하다. 철학이란 결국 알 수 없는 우주 속 파가운 날들 사이 두려움에 사로 잡힌 나라는 인간이 만든 둥지다." (<대한민국철학사>342쪽) 고독 속 중지 속 나, 어쩌면 그 철학에서 나는 홀로 있는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는 그 가운데 어떤 신비적 초월을 이야기할 수 있기도 할 것이다. 고독이란 듣기 좋은 홀로 있음의 말에서 말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그렇게 이런 저런 지식으로 자신이 숨을 둥지를 만드는 것도, 그렇게 합리화된 자기 둥지 속에서 어차피 변하지 않을 세상이라 고개 돌리고 숨을 곳을 만들어가는 철학은 현실에 대한 도피다. 나름 지식인이란 이가 만든 부조리 가득한 세상의 자기 위안 정도일 수 있다. 윤동주의 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이런 저런 이 세상의 논리 속에서 별 문제 없이 머물 수 있는 그 둥지 속에 숨어 있는 것도 부끄러움이었다. 박이문에게 철학한다는 것은 현실 속 부조리에 분노해 그 부조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책으로 빠져 들어 둥지에 숨는 것이다. 미국의 철학에 숨고 프랑스 철학에 숨고 중국의 철학에 숨으면서 말이다. 그러한 그 숨음은 결국 도피일 뿐이다. 그것이 윤동주에겐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에게 '나'는 수많은 조각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우리'다.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 그리고 동경, 시, 그리고 어머니... 소학교 책상을 같이 사용하는 아이들... 그 하나 하나의 이름들... 이국 소녀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가 된 계깁애들... 가난한 이웃들...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들이 '나'를 이루는 '나 있음의 조각들'이다. 가난한 이웃들... 그들의 아픔으로 부터 고개돌리고 서서 책속으로 파고 들어 정교하기 둥지를 만들어 우주 속 차가운 남들 사이 두려움으로 부터의 도피를 도모하는 박이문의 철학과 윤동주의 철학은 다르다. 나가 다르다. 도주해 안주하려는 홀로 있음의 나가 아닌 수많은 아픔들과 더불어 살아간 모든 이들... 심지어 읽은 시의 시인들... 이 모두와 더불어 있음의 나... 이렇게 다르다.
윤동주는 왜 철학자가 되어야하는가?
철학이란 철학의 고향에 대한 향수라고 한다. 성리학도 우리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할 곳에 대하여 사유한다. 하디에거도 마찬가지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마찬가지다. 윤동주의 철학은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할 곳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곳에 있지 않은 나, 더불어 있는 것이 나이지만, 그 우리 가운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로 있지 못하는 나, 그 향수에 아파한다. 그리고 서시에 이르러 드디어 그 고향을 향한 힘겨운 걸음에서 자신의 길을 다짐한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말이다. 그의 부끄러움은 있어야할 곳에 있지 못하는 향수병이라 할 수 있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나는 나 있음의 조각들도 생각한다. 수많은 조각들... 기억에도 없는 조각들...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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