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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유대칠

절대 행복할 수 없는 불행의 전도사들! 일간유대칠 2020.05.02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5. 2.
"행복하면 원수들이 슬퍼하고 불행하면 친구가 떨어져 나간다." (집회서 12장 9절)

부모가 자식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굳이 의식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냥 일상 속에 흔하디 흔한 대화 속에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 행복은 결국 '돈'이다. 그렇게 부보는 자식에게 불행을 전해준다. 저 사람은 얼마를 벌어서 성공했다. 더 사람은 무슨 건물이 있어서 성공했다. 저 사람은 부자 부모를 가져서 태생적으로 성공했다. 저 사람은 공부로 돈을 벌어서 성공했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돈이다. 그러나 지금 부모로 살아가는 이들 역시 그렇게 자랐다. 그들의 부모에게 배운 삶의 거의 유일한 가치는 돈이다. 돈이 행복의 기준이다. 행복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말로는 돈 없어도 행복하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 그 말이 거짓이란 것을 알게 된다. 돈을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하고 할 수 있고, 돈으로 대상을 판단하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말이다.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라 여겨지도록 말이다.

사실 돈이 유일한 삶의 기준은 아니다.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단 한 번 일회용으로 주어지는 삶, 돈말고 다른 많은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없는 돈으로 중고차를 사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가족의 행복한 미소를 보면 부럽다. 매일 같이 책 읽으며 같이 클래식 음악과 최신곡을 들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부럽다. 같이 작은 텃밭을 가꾸며 소소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모습들이 부럽다. 결국은 그 추억으로 산다. 그러나 돈은 그 추억보다는 아직 없는 것에 집중하게 하고,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게 한다. 지금 나는 한 없이 부족한 실패자이고, 성공을 위해 지금의 소중함은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생각하게 한다. 단 한 번 주어지는 일회용 인생을 말이다. 그렇게 돈돈돈! 강박 속에 살아간다. 

결국 돈도 남들이 보고 대단하다기에 힘을 가진다. 집을 많이 가지고 돈이 많은 이들은 돈이 삶의 중심이 되는 지금의 세상이 달라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달라지면 남들에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더 자본에 집중하길 원한다. 그래도 자신만큼 부자가 될 수 없으며, 항상 남의 부러움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이 불행의 연속, 그 연속의 시작은 대부분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이어진다. 돈을 많이 가지고 행복하면 사람이 모이고 돈이 없으면 사람도 모으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 그 비극을 이 세상의 현실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스스로를 한 없이 불행하게 하는 돈이란 놈의 폭력에 자식을 재물을 바친다.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라는 핑개 속에 말이다. 

나는 어떤 부모인가? 나 역시 아이들에게 불행을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쁜 불행 유전자는 전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 역시 모르는 답을 정답이라 오만 가득한 착각 속에 자식에게 강요하는 악마는 아닌가?

홀로 외로운 절망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가르칠 것인가? 강요 받은 오답을 살아오다 지쳐 삐뚤어진 가치관 속 홀로 한 없이 외로운 절망을 답이라 가르치는 것은 아닌가? 한 없이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고, 아이를 누군가와 비교하고, 아내와 남편을 누군가와 쉼 없이 비교하고, 더불어 있음의 소중함보다 자신에게 주지 않은 결핍만을 생각하면서 힘들어하는 삶이라며,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심각해진 정신병리적 통증 속에서 만들어진 그 오답을 정답이란 듯이 살아가고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 쉽지 않다.  힘겨운 고민이다. 나는 나의 삶으로 보여주고 싶다. 조금 힘들어도 충분히 의미있는 삶을 말이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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