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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유대칠

그 악을 보자! (일간유대칠 2020.04.25)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4. 25.

부동산 부자, 연예인 누구 누구는 부동산 부자라고 기억되고 인식된다. 그것을 보면서 부럽다 생각한다. 행복의 기본 틀이 생존이었다. 한국전쟁과 독재시대를 걸치면서 가난한 부모들이 생각한 행복의 기본은 생존이었다. 생존, 가장 근본적인 생존 욕구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지배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것으로만 세상을 본다. 부모도 자식에게 그것을 가르친다. 이기라고 말이다. 공부는 이유는 너무나 쉽게 돈이 된다. 돈이 생존 과시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부동산 부자는 말 그대로 선망의 대상이다. 그들이 저지르는 사회적 악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그들의 소유이지 그들의 결핍이 아니다. 부동산 부자가 되기 위해 온갖 사회적 악이 일어난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말이다. 부모가 죽고 부동산은 다툼의 이유가 된다. 다툼이 없기 위해선 누군가의 익숙한 포기가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부동산은 형제와 자매 그리고 남매 사이 서로가 서로를 저주하는 이유가 된다. 결국 부모의 서글픈 행복관이 만든 비극이다. 사회적으로 연예인들이 그렇게 구입한 건물이 지역 상권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가. 90-80%를 대출 받아서 엄청난 소득을 내며 있다. 그 피해의 크기는 누군가의 눈물과 무관하지 않다. 

남편도 아내도 서로가 서로를 돈의 가치로 본다. 그렇게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부모라는 이가 자녀의 남편과 아내를 사랑의 대상이나 공존의 대상이 아닌 경제적 가치로 평가하고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것이 삶의 비법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아마 그 둘도 평생 그렇게 살아왔을지 모른다. 보험금을 위해 서로를 죽이는 이들을 뉴스로 보는 일이 이젠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 결핍보다 더 크게 보이는 소유, 결극 그 소유는 결핍을 더 크게 하고 개인을 더 불행하고 외롭게 하고 사회를 더욱 더 불안정한 곳으로 만든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는 처음부터 없다. 

지금 부모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부탁한다. 돈이 아닌 행복, 홀로가 아닌 더불어, 다툼이 아닌 화해를 이야기하자. 지금 우리의 불행을 당연한 삶의 가치라고 되는 듯이 자랑스럽게 물려주지 말자. 제발

몇 일 전 이혼을 준비한다는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 서로가 서로를 철저하게 돈으로 계산하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나의 행복은 오직 나의 소유만으로 오지 않는다.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됨의 순간, 작은 미소로 나가 아닌 우리에게 찾아와 머문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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