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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

부모를 위한 철학 1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6. 6.

내 아이는 나의 생각과 기대 속에 구속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생각과 다른 길을 가고, 나의 기대와 다른 것을 선택해도, 상관 없다. 나의 생각이란 이 작고 작은 유한함 속에 가두기에 내 아이의 꿈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다.” 부모의 이 작은 말에 어느 아이는 자기 꿈의 크기를 조정한다. 돈이 없어서 너에게 도와줄 것이 없고, 돈이 없어서 너에게 사줄 것도 없고, 이 세상은 돈이 결국 지배할 것이고, 아빠는 돈이 없어서, 너에게 도울 것이 없으니, 알아서 작게 작게 살아라. 이렇게 알아듣기도 한다. 얼마전 한 누나를 만났다. 공부를 아주 잘 하지 못했지만, 그런데로 자기 생각이 선명했다. 내가 봐서는 무척이나 고집이 강하고 화도 잘 내는 아버지와 술 이외 것엔 별로 관심이 없던 어머니 사이에서 누나는 제법 씩씩하게 살았다. 종종 과도한 도덕적 강박이 느껴지기도 했다. 옷이 조금이라도 자기 자리를 잃으면 불안해서 화장실로 가서 마치 군인이 옷을 칼 처럼 맞추어 입듯이 입었다. 늦은 밤을 다닌다는 것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는 남자 친구가 있었던 적도 없었는데 항상 수도자의 삶을 스스로에게 강박적으로 주입했다. 한달인가… 같은 공간에서 공부할 때, 나로는 숨이 막힐 듯한 강박이 힘들기만 했다. 그러나 항상 열심이었다. 아주 좋은 성적은 아니라도 항상 열심이었다. 50이 된 누나를 거의 20년만이 봤다. 마지막 들은 과거의 소식은 대학은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술이 점점 심해져 병원 생활을 했고, 홀로 경제 활동을 해결하기 힘든 아버지는 누나에게 우리는 가난하다는 식의 사고를 쉼 없이 주입했다. 누나는 대학을 포기하고 부동산 사무실 경리, 공장 경리, 공장 노동자, 식당 직원… 참으로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누나의 엄청난 희생으로 아버지와 남동생은 각각 작지만 작은 아파트를 가지게 되었다. 20년 만에 만난 누나는 더 이상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투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누나는 불안해했다. 50. 이제 경리로 받아주는 곳도 없고 이래 저래 점점 더 힘든 일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도 못했다. 과거 누나가 자신의 가정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아버지는 불쌍한 사람이라 자신이 돌봐야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가정을 이룰까봐 자신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누나는 그 말을 시켰다. 어려서 쉼 없이 들은 아버지의 가난하다는 말은 누나를 대학 자퇴생으로 만들었다. 스스로 선택하게 말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아버지의 매우 이기적인 강제다. 스스로 강제했지만 결국 누나 스스로 선택하게 만드는 아주 나쁜 강제 말이다. 남동생은 가난으로 기죽지 말아야한다고 어려서 부터 그렇게 몰래 무엇인가 사주었다. 나에게 영어를 배울 때, 무척 비싼 신발을 나에게 자랑스럽게 자랑했으니 말이다.

학자가 되고 싶었던 누나의 꿈은 가난하다 가난하다 가난하다… 이 말에 점 점 점 작아졌다. 아버지는 누나의 몫이라던 아파트도 남동생에게 주었다. 결혼해서 가장이 되면 기죽지 말고 살아야한다는 태도, 아버지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누나는 더 나약해지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은 아버지와 남동생에 대한 희생, 그리고 술과 외도로 나쁜 기억만 남기고 갑자기 죽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 누나는 더 더 더 나약해지고 이 아픔도 20년 만이 만난 1시간 동안 스치듯 이야기하며 또 길을 나섰다. 

누나의 아버지 속 누나는 어떤 존재일까? 어차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크게 성공할 수 없는 존재 정도일까. 자신이 어머니를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였듯이 그렇게 누나도 자신에게 많은 것을 양보해야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 자신이 당했듯이 자신의 딸인 누나가 당하는 것도 당연하고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했을까… 무엇이든 하나를 확실할지 모른다. 그 아버지란 이의 관념과 누나를 향한 이기적인 기대에 누나의 삶은 온전히 누나의 것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50이다. 

아이들과 사소한 기쁨을 추억으로 남기는 방법보다 양보라는 이름의 포기, 어쩔 수 없다는 강제, 남동생과 자신을 위한 삶만이 남은 50의 누나는 이제 허망함과 슬픔의 시간, 누구도 언젠가 고맙다 하지 않는 이 슬픔의 시간, 철저한 홀로 있음 앞에서 자기 삶을 슬퍼하고 있다. 

학자로 살기 원한 누나의 삶, 과연 누가 그 삶을 부정하게 만들었을까… 

나에게 부모란 정말 거름 같은 존재가 되어야할 같다. 무엇을 바라지도 않고 무엇을 강제하기도 않지만 든든하게 지원하고 응원하며 더불어 있음의 기쁨 속에서 살아감을 일상 속에서 편히 누리게 하는 존재누나와의 길지 않은 시간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유대칠 2020 06 06

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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