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불어존재론

부모를 위한 철학 2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6. 8.

부모를 위한 철학 2

그 친구의 아버지는 뱃사람이었다. 정확히 그 친구는 잘 기억도 하지 못할 그 과거, 아버지는 뱃사람이었다. 그러나 사고로 두 눈을 다치고, 친구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앞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뇌에 조금의 문제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친구의 부모님들은 보호자라기 보다 어려서 부터 보호 받아야하는 사람이었다. 친구는 중졸이다. 국밥을 먹지 않는 친구는 남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대부분의 시간을 국밥집에서 일을 했다. 번 돈은 부모님의 몫이었다. 친구는 식당 구석에서 생활했다. 20대가 되고, 서서히 그를 이해한다는 친구들은 자신들의 대학 생활에 충실했고, 친구는 서서히 그렇게 아주 서서히 지워져갔다. 제법 시간이 지나서 만난 친구는 밖에서 보면 술집 처럼 보이는 어느 것의 안마사였다.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여자는 아니고, 그냥 안마사라며 나에게 자신을 다시 한번 더 확인시키는 친구가 나는 아팠다. 자신에게 추태를 부리는 남자들의 이야기, 아픈 이야기, 그러나 더 힘들고 아픈 것은 이제 너무나 익숙하게 딸의 돈을 기다리는 붐님이라 했다. 고맙다. 수고한다. 이 한 마디 없이 딸의 희생은 외롭기만 했다. 

일자리를 찾아 대구를 떠난 친구가 다시 4-5년 만에 아주 아주 우연히 스친 친구의 소식, 수면제 없이 잠을 잘 수 없다는… 힘겹게 힘겹게… 별로 달라지지 않은 삶을 아이에게 주기 싫고, 고통 뿐인 가정을 다시 만들기 싫은 그는 연애와 결혼도 없이 여전히 외롭기만 한 삶을 살았다. 

사촌 언니가 찾아와 세상 걱정 없이 혼자 벌어 혼자 사는 얼마나 좋으냐. 너가 최고라는 말. 시간이 지나 갑자기 떠오른 그 말에 한 참을 울었다는 친구.

40을 향하는 어느 날, 친구는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고했다. 열심히 살았다. 고맙다. 이 모든 말이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 같은 삶은 생각보다 흔하다. 친구에게도 이 모든 말들은 친구의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남의 것들의 것, 소설 속에나 나올 이야기였다. 추억할 것이 많지 않다는 친구의 말이 아프다. 수년 만에 애써 연애했지만, 자신을 장난감 처럼 생각한 사람도 아름다운 추억이라기 보다는 아픔이고, 여전히 돈 이야기 뿐인 부모도 아픔이고, 이젠 너무나 다른 삶을 사는 친구들도 아픔이다. 

홀로 유튜브를 보다 컵라면 하나를 먹고 그냥 그 순간 순간을 이겨낸다. 

왜 우리는 그를 우리의 품으로 안아주지 못했을까? 장애를 가진 부모님의 딸, 중졸의 그가 대졸의 가진 자의 자식과 더불어 행복할 순 없을까…

부모로 산다는 것…

친구로 산다는 것…

다시 이런 저런 생각을 본다.

나의 것 하나 내어 주지 않는 나,

나의 것 하나 내어 주지 않고

나를 위한 너,

나의 작은 시선에 보인 너,

그런 너를 때론 조롱하고 때론 이용하고,

때론 무시하며 그렇게 있던 나.

어쩌면 너의 그 아픔에 나 역시 한 몫을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유대칠 씀 2020.06.08

'더불어존재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 주체.  (0) 2020.06.13
'나'는... 아빠로 산다는 것...  (0) 2020.06.08
부모를 위한 철학 1  (0) 2020.06.06
'당함'과 '행함'  (0) 2020.06.06
아닌 것으로 있다는 것  (0) 2020.05.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