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은 어지럽다. 나의 방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쓰레기 같은 곳이다. 어느 하나 정돈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내 눈엔 그래도 나름 질서가 있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일 뿐이고, 아마 많은 이들의 눈에 나 자신과 같은 이 공간은 그냥 쓰레기 같이 보일 것이다. 그렇다. 이제까지 그랬다. 그 쓰레기 안에 내가 앉아있다. 마치 한 마리 바퀴벌레처럼 말이다. 쓰레기 더미 안에서, 바퀴벌레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눈엔 역겹지만, 그는 그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을지 모른다. 스스로에게 충실하며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쓰레기이고, 그 쓰레기 가운데 죽여 버려야 할 어디에서 쓸데없는 쓰레기보다 못한 바퀴벌레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처럼 그 쓰레기 안에서 책을 쓰고 논문을 쓰고, 과외 선생일 때, 학원 선생일 때, 학생들 위한 교재를 만들고, 이런 저런 강연의 강의 원고를 만들었다. 바퀴벌레가 쓰레기 안에서 자신에게 충실하듯 나 역시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다. 어디에도 부끄럽지 않다. 결혼 후 내가 번 돈의 100%는 남들의 눈에 쓰레기로 보이는 이곳에서 죽으라 노력하며 번 돈이다. 생각해 보면, 마땅히 열심히 산다 응원의 말 한 마디 제대로 들은 적 없지만, 이 길이 나의 길이라 죽으라 나를 부수며 살아왔다. 아마도 모르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나의 가장 최선을 부끄럽지 않게 노력해왔다. 대단하지 않은 곳, 누구도 응원하지 않은 곳에서 말이다. 이 길이 나의 길이라며 말이다. 이 외로운 길이 나의 길이라며 말이다.
‘거름’이 생각난다. ‘거름’은 역겨운 악취 나는 쓰레기가 아니다. 그것은 할머니 집 대문 넘어 쌓여있던 것들이었다. 더러운 듯이 보이지만, 더럽다는 생각은 없다. 내가 먹을 고추가 되고 배추가 되고 이런 저런 야채가 될 그런 것들이라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그런 생각을 굳이 하겠다고 의식을 할 때나 드는 생각일 뿐이다. 막상 할머니 집을 드나들 때는 한 번도 거름을 두고 따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거름은 그냥 그 자리에 더럽지만 더럽지 않은 것으로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더 이상 그 거름을 볼일은 없었다. 그 거름이 자신을 내어 주어 흙 속으로 흩어져 일군 그곳의 고추와 그곳의 배추도 이젠 추억이다. 그러나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니다. 분명 ‘나’를 이루는 그 많은 있음의 조각들 가운데 하나로 지금 이 순간도 나를 이루고 있다. 나의 한 조각이다. 할머니, 거름, 고추, 김치, 무말랭이...
쓰레기 같지만 쓰레기가 아닌 거름, 나의 방도 그 거름과 같은 곳일지 모른다. 그리고 나도 그 거름일지 모른다. 흩어져 사라지지만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한 그런 거름 말이다. 그 모든 아픔이 그저 운명이 그런 거름 말이다.
언젠가 세월이 더 지나 내 아이들의 기억 속 나는 쓰레기 더미 같은 곳 가운데 앉은 땀 많고 쉽사리 피곤하며 뚱뚱하고 못생긴 돈 못 버는 아빠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아빠라도, 어디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아빠라도, 정말 못난 아빠라도, 작고 작은 것 하나 정도 고마운 아빠로 남았으면 좋겠다. 나 죽어 흙으로 흩어져 버렸을 때, 이 쓰레기 같은 곳 가운데 앉아 글을 적던 내가, 누군가에게 바퀴벌레 같은 내가, 그런 내가 그리웠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그 거름이 보고 싶다.'
유대칠 2020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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