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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

부모를 위한 철학 4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6. 14.

제법 큰 덩치지만 그는 항상 죄인 처럼 보였다. 그의 어버지는 나에겐 자상한 아저씨였지만, 그에겐 무서운 아버지였다. 평생 힘들게 일군 작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자부심이 너무 커서인지 아들의 능력으로는 그 회사를 이어가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만난 그는 그렇게 계속 아버지의 옆에서 보조로 몇 년을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짐을 나르고 짐을 지키고... 아저씨는 단 한 번도 그를 좋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하루도 제대로 놀지 못하고 일을 했다. 하지만 그 마을에선 누구나 알듯이 아저씨는 부자였고, 그 부자라는 말에 능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능력만큼 그는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짐을 나르고 짐을 지키고 운전을 하는 사람이었다. 

부자 아저씨가 마음에 든 그의 장인은 결혼을 허락했다. 장인의 그 말도 그는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결혼 이후에도 그는 항상 그의 아버지, 그 아저씨의 아들, 그 아저씨의 회사에 짐을 나르는 아들. 짐을 지키는 아들이었다. 취미로 자전거를 하려 해도, 쓸데 없는 일이라며 허락하지 않았다. 그에게 허락된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가 아저씨 처럼 되기를 바란 모양이다. 항상 자신이 이렇게 살았으니 너도 이렇게 살아라라고 이야기했다. 무능한 아들에 대한 걱정도 아들은 힘겹기만 했다. 

홈플러스에서 아들과 걷는데, 발을 부러진 그가 햄버거를 먹으러 가고 있었다. 일하는 장갑에 부러진 다리... 

아마 아저씨도 그를 사랑할 것이다. 그 사랑이 강제이고 강압이라도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어쩌면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명령하고 명령을 듣는 것만을 익혀와서일까? 나에게 그 아저씨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지만 그에게 그는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닌 듯 했다. 사랑을 배운 적 없는 그는 그의 아이에게 어떤 사랑을 해 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식에게 대접을 받기 위함도 아니지만, 자식을 지배하려 해서도 안된다. 응원하며 뒤로 물러나는 것... 그렇게 사라지는 것... 그렇게 사라짐으로 그리움으로 남는 것... 그냥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아버지 회사의 짐 나르는 이가 아닌 그가 그로 살아갈 그 날... 조금 가난해도 자기 결단으로 일하는 그의 땀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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