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는 '우리'라는 전체, '우리'라는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 아무리 '나는 나만으로 그만이다'하며 홀로 있으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나'가 아니다." 유대칠, <대한민국철학사> 450쪽.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니고 둘이지만 둘이 아니고... 그렇다. 경우에 따라선 셋도 넷도 다섯도 그렇다. 여럿이라 보이지만 실상 하나이다. 하나는 하나가 아닌 여럿이며, 그 여럿이 하나를 이룬다. 하나를 이루는 여럿은 하나를 위한 여럿이 아닌 저마다의 여럿이지만, 저마다의 여럿이라 하여 저마다 다투고 싸우는 여럿도 아니다. 하나지만 하나 아닌 여럿이고 여럿이지만 여럿 아닌 하나이고, 하나이며 하나이고 여럿이며 여럿이며 여럿이고 하나이다. 내가 생각하는 더불어 있음이란 어쩌면 저와 같다. 나란 한 존재도 분명히 너무나 선명한 나이지만 그 나를 이루는 것은 나라는 하나의 아집이나 주체가 아닌 여럿이 모여 이루어진 여럿이다. 여럿이 더불어 있음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이고 하나이며 하나이다. 그러나 나는 여럿이고 여럿이며 하나이다. 이런 나들이 모여서 우리를 이룬다. 그 우리도 여럿이며 하나이다. 여럿이란 말이 서로 차이를 드러낸다는 말이 나와 다른 너와 적이 되어 있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르다는 것이고 우리 가운데 나 아닌 너로 있다는 것일 뿐이다. 너가 우리의 밖이란 말은 아니란 말이다.
나의 철학은 시인을 만나고 동화작가를 만나고 거리의 철학자들을 만나 대한민국철학사를 그려냈다. 이제 아픈 이 땅의 못자국, 그 못자국에 일어난 피와 같은 그림으로 울었던 이응노의 작품에서 나의 철학은 다시 대한민국철학의 한 모습을 그려보려 한다.
나의 이응노 만나기는 오늘도 버스 안에서 지상철 안에서 계속된다.
2020 07 24
유대칠
https://g.co/arts/dij37yFVg5fLSaSr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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