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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과 이응노

이어지고 뭉치고 흩어지고 다시 이어지며 뭉치는 역사의 장.[ 숲 (이응노 2981년 작)]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1. 9.

한지에 잉크로 그려진 숲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중앙에 드러난 큰 몸짓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빈 공간에 강한 여백을 배경으로 그려진 획이 아닙니다. 공간의 배경인 듯이 그려진 듯 보이는 작은 몸짓들도 무엇인가 하나의 이상한 질서 속에서 혼돈의 외침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결코 중앙의 큰 몸짓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듯이 그림의 경계 부분에서 강한 몸짓이 그림 밖 미쳐 이 그림에 담기지 못한 부분에서의 큰 몸짓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이게 합니다. 

숲은 1981년 작입니다. 박정희는 시대가 사렸지만 역시자 독재는 그대로 이어집니다. 전두환의 잔혹한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광주에선 많은 이들이 시대의 어둠에 항거하며 죽어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역사의 영웅으로 그 이름이 그 높이 올려진 이들이 아니지만 그들이 모이고 이어져 하나의 거대한 몸짓이 됩니다. 그러나 그 몸짓이 하나의 획일화된 몸짓은 아닙니다. 뜻은 하나이지만 그 뜻의 드러난 모습은 저마다 다른 흩어짐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져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에 흐린 몸짓도 있고 지금까지 익명으로 남은 몸짓도 있으며 이런저런 배경 속에서 두드러져 더욱더 선명히 기억되는 이름도 있습니다. 한 점 한 점 서로 다른 모양으로 있으며 어느 점의 몸짓은 크고 어느 점의 몸짓은 작아도 모두가 하나의 뜻으로 하나의 거대한 질서를 혼돈 속에서 만들어냅니다. 이응노의 그림 <숲>에서 하나하나의 몸짓이 그러하듯이 그렇게 1980년의 외침도 그러했습니다. 큰 몸짓에 강한 검은 몸짓도 더불어 있는 몸짓들 없이 외롭기만 합니다. 열사의 강한 몸짓으로 그려진 애씀도 작은 이 땅 민중의 안아줌과 더불어 있음이 없다면 얼마나 외롭기만 할까요. 그 강한 열사의 자기 내어줌으로 한 자리에 불러냄이 아니라면, 광주의 그 아픈 외침으로 한 자리에 불러내지 않았다면 작은 몸짓들 하나하나는 서로 흩어져만 있어 저마다 약하기만 했을 것입니다.

더 강하기 위해 더불어 있고 외롭지 않게 더불어 있지만 저마다 서로 다른 몸짓으로 있습니다 흩어져 하나의 뜻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역사의 더불어 있음은 제국주의나 전체주의가 아닙니다. 거대한 정치 철학을 배경으로 몸짓들이 그 이론 속에서 질서 지워 소리친 것도 아닙니다. 대학생, 고등학생, 직장을 다니던 남녀 그리고 주부와 사람들의 눈에 대단해 보이지 않던 창녀라 불린 이들 조차 서로 다른 모양으로 흩어져있지만 거대한 이론의 담론 속에 살지 않았지만 한 뜻으로 일어나 싸웠습니다. 그 뜻에서 모두는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서로 흩어진 다양한 나무들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혼돈 속 거대한 숲을 이루듯이 그렇게 역사란 숲을 이룬 것입니다. 그 숲에서 창녀는 숨어 하느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민중의 핏빛 강에 고개 돌린 종교인의 이름뿐인 거룩보다 더욱더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천하다 무시받고 무시받던 이들이 군인의 총칼로부터 시민들을 치마에 숨겨 준 모습은 그 순간 하느님의 손과 발이 되어 민중의 옆에 있던 거룩 그 자체였습니다. 서로 다르지만 서로 다른 삶에서 서로 다르게 살았지만 한 자리에 모여 뜻을 이룸에 열심이던 그 시간, 부당한 힘의 총알이 사람들을 죽이고 하늘에선 헬기가 총으로 시민들을 쓰러뜨리던 그 시간, 창녀도 주부도 학생도 피하지 않고 작든 크든 역사란 숲의 거룩한 몸짓이 되었습니다. 숨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론으로 무장한 하나의 단일한 외침의 화음에 따라 외쳐진 합창이 아닌 서로 다른 모양으로 서로 다른 조건에서 서로 다르게 살며 분노하는 불협화음의 몸짓이지만 그 가운데 뜻으로 하나 된 그러한 숲... 역사...

말로 설명이 어려운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서로 다르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크게 그리고 작게 서로 따로 흩어지지 않고 흩어진 것이 하나의 뜻으로 하나로 더불어 있던 그날...  뜻은 이론을 넘어 흩어진 여럿을 넘어 하나의 모습으로 더불어 있게 한 그날... 

[숲]은 그 날을 그리고 있는 듯합니다.

이응노의 그림은 감정을 정화하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아니면 지금도 여전히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는 쉼 없이 무시되고 아파하는 흩어진 그러나 하나의 뜻으로 외치는 그 외침에 대한 영정 사진 같습니다.

유대칠

2020 11 09

 

artsandculture.google.com/asset/forest-lee-ungno/wAEJ4ZXKUem8WA?hl=ko

 

숲 - 이응노 - Google Arts &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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