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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오셨습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9. 29.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의 시작은 무척이나 긴 족보로 시작합니다. 이게 무엇인가? 처음으로 복음서를 마주한 이들은 당황할지 모릅니다. 구약의 예언이든 무엇이든 그저 이 세상의 희망은 하늘에서 바로 오셔도 좋을 것은 굳이 이 긴 족보의 끝에 있다며 그렇게 긴 족보를 소개하는 것일까? 당시 유다인에게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란 것은 매우 큰 의미였기에 이 두 분의 후손임을 보이는 족보를 강조해야 할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이 족보가 무슨 뜻을 가진 것일까요? 그저 지식으로 주어진 이런저런 구약과 신약의 관계와 두 위대한 신앙인의 후손이란 것 이외 무슨 뜻을 가지는 것일까요? 예수가 이 땅에 오기까지 등장하는 족보 속 인물들은 참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있습니다. 간음자도 있고 살인한 자도 있으며 근친상간한 인물도 있습니다. 구약의 왕과 영웅이 나열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들도 기억이 되기도 하지만, '타마르(다말)'과 '밧 세바'와 같은 여인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밧 세바와 타마르와 같이 간통녀와 시아버지의 아이를 낳은 여인들이 예수의 족보에 등장한다는 말입니다. 권력을 가진 인물이라 하여도 그들 삶에 죄가 없을까요? 어찌 보면 구약의 많은 이들은 도덕적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많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의 끝에 예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깨끗하고 깨끗한 이의 깨끗한 혈통에 깨끗한 자리에 등장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는 권력과 탐약으로 이루어진 인류의 참으로 다양한 온갖 죄악의 끝에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 바로 그들을 통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나 역시 온갖 죄악이 있습니다. 남을 미워하기도 하고 남에게 먼저 다다가 안아주기 보다는 우선 나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 그를 멀리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하는 삶을 산다 말로 하고 다녔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신앙 자체가 위선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 순간 나의 이런 삶에도 예수는 찾아오십니다. 아니, 바로 이런 삶이라서 예수는 찾아오신 것이겠지요. 나라는 냄새나는 마구간으로 온갖 죄의 이어짐 속에 살아가는 나의 삶에 예수는 찾아오신 것이겠지요. 온갖 인간의 죄악이 담긴 족보를 타고 마구간에 오신 것처럼, 그 온갖 죄악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의 삶으로 내 존재의 이 냄새나는 곳으로 찾아오신 것이겠지요. 

출산이 가까워온 이들에게 작은 자리 하나 내어주지 않은 곳에, 사람을 위해 살다 사람을 위해 죽어가는 가축들의 공간에, 그 많은 죄악을 멀리하며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안아으며 그들의 통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안아주신 것이고, 그리고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 죄에도 예수는 우리와 그리고 나와 더불어 있자며, 그 죄인을 통하여 오셨습니다. 자기 야심과 이기심으로 살아가며 이런저런 변명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는 더불어 자신과 우리로 살자며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말입니다. 우리의 마구간에 그리고 나의 마구간에 말입니다. 우리가 아집 속 내어주지 않은 우리 자리의 밖에, 나의 아집으로 내어주지 않은 나의 자리밖에 말입니다.

오늘 예수의 족보를 봅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오셨구나. 생각합니다. 사람이면 다 저른 식이야! 세상 달라지지 않아! 이 세상을 떠나 살아야지! 이것이 아니라, 그 죄의 공간에 죄인을 통하여 죄로 아파하며 우리에게 찾아온 예수를 봅니다. 아직 성탄은 멀지만 혼자 조용히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오셨습니다. 나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다가가 더불어 있음으로 우리 되려 합니다. 주님께서 더불어 있어 주심을 믿습니다. 이 걸음 물러서지 않게 하소서."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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