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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주님의 기도 9 - 더불어 하나되게 하소서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0. 2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악에서 구하소서"

'악'이 무엇일까요? '악'이란 있는 것일까요? 있는 것이라면 그것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일까요? 하느님이 정말 악을 창조하셨을까요? '악', 즉, '나쁨'이란 어쩌면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 그렇게 자신의 있음에 충실하지 못한 것, 바로 그것이 나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리고 마련해주신 그 자리에 온전히 있으려 하지 않거나 그 자리에서 벗어나 자기 욕심만을 챙기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나쁜 것, 즉 악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악이란 하느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우리 욕심과 아집이 만든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아집은 우리를 흩어지게 합니다. 결국 악은 우리를 흩어지게 합니다. 우리 모두를 홀로 외롭게 합니다. 우리를 위해 노력하자 하면, 더불어 살 생각보다 우선 나의 손해를 계산합니다. 이만큼 손해인데 왜 우리를 위해 애써야 하는가 따집니다. 그리고 억울해합니다. 결국 그는 더불어 있지 못하고 홀로 있게 됩니다. 

우린 생각보다 더불어 있지 못합니다. 일제 강점기, 홀로 잘 살기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던 친일파는 지금도 잘 삽니다. 독재 시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사람을 죽이며 누릴 것을 누리던 이들은 지금도 잘 삽니다. 도덕적이지 않아도 잘 사는 이들이 지금도 많습니다. 도덕의 질서가 무너진 공간에서 믿을 것은 그저 힘과 돈입니다. 다른 것을 믿지 않고 모두 의심합니다. 힘겹게 노점에서 장사하는 이를 보고도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놈도 사실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돈도 많이 버는데 나를 속여 그것을 팔려고 노점에서 그러고 있는 거야." 그리고 자신의 그 생각을 현실이라 믿어 버리고, 그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거짓말쟁이에게 선행을 필요 없다며 자신의 무관심에 면죄부를 줍니다. 세월호의 비극 앞에서도 그 비극의 현실을 믿지 않습니다. 자식 두고 돈 욕심에 저런 것이라 생각해 버립니다. 그러면 그들과 함께 울고 분노하지 않아도 됩니다. 거짓에 협조할 필요 없다 생각해 버리면 되니 말입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무력한 양심에 면죄부를 줍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이 주신 양심, 그 양심의 소리에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하나입니다. 그 방식과 모양새는 다르지만 있어야 할 곳은 하나입니다. 이 사회의 부조리로 아파하는 그 아픔의 자리, 그 자리에 우린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앞에서 계산기를 들고 자신의 이득을 따지거나 거짓을 진실이라 확신하며 자신의 비양심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부끄러움'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의 소리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다는 양심의 분노입니다. 지금 그렇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양심의 소리입니다. 양심의 눈물이고 분노입니다. '부끄러움' 앞에서 덜 부끄럽기 위해 우린 우리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힘들고 때론 아파도 피하지 말아야 하는 우리 각자의 잔입니다. 

양심을 따라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면, 우린 더불어 하나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고, 이 사회의 부조리로 아파하는 이들의 아픔과 그 아픔의 눈물과 더불어 하나 되어 함께 울고 분노하며 그렇게 그 아픔과 눈물이 홀로 외롭지 않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더불어 하나 된 우리 가운데 하느님 역시 더불어 있으시리 믿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 더불어 하나 됨 자체가 하느님의 품 일지 모릅니다. 

"악에서 구하소서!"

하느님에게 청하며 동시에 다짐해야 합니다. 더불어 하나 되어 우리로 살아갑시다. 나의 아집으로 그 더불어 하나 됨이 무너지고 흩어져 홀로 있는 여러 외로움이 되지 않게 노력합시다. 신앙은 그저 가만히 하느님께 요청하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기도가 현실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각자가 서로에게 기도의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야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나 아닌 너는 남이 아닌 나 아닌 나이니 말입니다. 악은 하느님이 주신 자리에 있음입니다. 그 자리에 있으려 노력하는 것이 신앙이며, 그 자리에서 벗어나 아집을 따라 홀로 누리며 높아지겠다는 것이 악, 즉 나쁨입니다. 우리 흩어지지 말고 더불어 하나 되어 삽시다. 그렇게 하느님의 품에서 벗어나지 맙시다. 그러면 이 땅에도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며, 그리 된다면, 이 땅에서도 우린 하느님의 품에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바로 그런 삶을 살자는 바람이며 동시에 다짐입니다. 이제 그렇게 살아봅시다. 하느님의 품 안에서 하느님과 더불어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살아봅시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0 20

[앞으로 주님의 기도를 연재하려 합니다.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길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서재 금호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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