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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불행하여라 4 -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0. 27.

<마태오복음> 23장 11-16절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4.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엄한 단죄를 받을 것이다.

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참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위선의 권력자들, 위선의 윗사람들은 새롭게 희망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를 더욱더 절망의 늪으로 끌고 갑니다. 예수께서 절망의 우리에게 희망으로 오셨다면, 그들은 희망으로 다가가는 우리를 절망으로 이끕니다. 과거 문익환 목사님은 그리스도교의 지난 악행을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사람은 홀로 강해지려는 욕심을 떨치기 힘듭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이런저런 듣기 좋은 수식어로 자신의 아집을 포장하면서 홀로 강해지고 홀로 높아지려 합니다. 때론 그 홀로 높아지면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이들이 하느님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자랑을 하면 처음 시작한 이들은 그 말이 맞는가 유혹되기도 합니다. 하느님에게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돈도 많이 내고 봉사도 더 많이 하면 홀로 하느님에게 더 가까워지는 줄 압니다. 곁에 있는 이의 아픔보다 홀로 하느님에게 더 가까워지려 합니다. 위선의 권력자의 유혹에 그만 자신도 지옥에 떨어진 셈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돈과 봉사의 시간으로 천국을 매매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홀로 더 하느님에게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은 홀로 아집에 쌓여 살아가는 것일 뿐, 하느님에게로 가는 길이 아닐 것입니다. 

성당이든 교회든 제법 돈 있는 이들이 회장도 하고 앞서 서서 대장 노릇을 하면 자칫 스스로도 자신이 하느님에게 더 가까운 줄 착각합니다. 그뿐인가요.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가 하느님에게 더 가까운 줄 알기도 하고, 그것도 아닌 이들은 돈 많이 이의 옆에서 비싼 술이라도 한 잔 얻어먹을 생각에 그만 그의 편이 되어 버립니다. 하느님이 아닌 한 사람의 편이 되어 그가 사주는 것을 나누고 그를 높이면 또 그는 홀로 누리는 기쁨을 즐기며 하느님에게 더 가까워졌다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아집과 그 아집의 편에 선 이들이 더불어 있는 우리를 분열시킵니다. 더불어 있는 평화를 파괴합니다. 거짓과 위선의 윗사람은 그렇게 더불어 삶을 파괴하며 때론 사람들을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끌고 갑니다. 성당과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만 마귀의 편에 더욱더 가까운 이가 되어 버립니다. 

더불어 있는 윗사람은 윗사람이 아닌 윗사람입니다. 아랫사람 아래 있는 윗사람입니다. 사실 하느님 편에 위가 어디고 아래가 어딥니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존재하는 한에서 하느님의 덕으로 존재합니다. 하느님의 존재에 우린 참여하고 있음으로 우린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우리 모두 그리고 저 아름다운 대자연은 모두 하느님 품 안에서 존재론적으로 한 핏줄입니다. 한 핏줄끼리 위가 어디이고 아래가 어디인가요. 그저 더불어 살아갈 뿐입니다. 아래로 내려가 아파하면 더 아래로 내려가 이끄는 것이 더 높아지는 길입니다. 구원은 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100미터 단거리 달리기처럼 그렇게 홀로 1등으로 하느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아니라.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며 쓰러지면 다 같이 잠시 멈추고 지치면 다 같이 조금 천천히 가는 그런 더불어 나아갑니다. 구원은 홀로가 아닌 더불어 우리 가운데 당당한 나에게 가능한 상태일 듯합니다.

그러나 거짓과 위선의 윗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자신만이 하느님의 품에 있다 착각하며 하느님이 아닌 자신의 욕심을 하느님이라 소리칩니다. 이런 이들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더 진지하게 우리로 더불어 하나 된 가운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느님 말씀의 참 뜻을 궁리하고 공부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은 그저 걸어서 성당과 교회를 간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치열한 고민과 궁리이며 실천입니다. 신앙은 삶이 되는 앎 없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애씀이 우리를 악의 유혹에서 벗어나 나의 곁에 소중한 벗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품에 안기게 할 것입니다.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려는 이들의 유혹, 오늘도 조심해야겠다 다짐합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 혹시 그런 유혹을 저지르는 마귀의 봉사자가 아닌가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거짓의 윗사람을 두고 예수께서는 불행하라 하십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더불어 살아가며 아집을 버립니다. 유혹에 쉽사리 빠지는 것도 어쩌면 나의 안에 아집 때문이 아닐까요.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0 27 

[한동안 '불행하여라' 하신 예수의 <마태오복음> 23장 말씀을 묵상하며 연재하려 합니다.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실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서재 금호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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