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다'. 그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내 있음의 '어쩔 수 없음'이다. 나는 '있다'. 그것도 여기에 있다. 이런저런 의심으로 지금 여기 나를 고민할 수 있지만 결국 나는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 '있음'이 삶을 살지 않는다. 삶 속 나의 '있음'은 항상 '누군가와 있다'. 그 누군가가 경우에 따라선 사람이고 물건이고 사건이고 역사일 수 있다. 그러나 항상 '누군가와 있다'. 그 누군가와 있으며 동시에 나는 그 누군가에게 '누구'가 된다. 바로 철학의 순간이다. '누구'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저 '홀로' 있을 때 '나의 있음'은 '그저 있음'이지만 '더불어' 있을 때 '나의 있음'은 '누구로 있음'이다.
나는 항상 누군가에게 '누구'이다. 나의 '누구임'이 나의 '모두'는 아니다.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 나의 '누구임'은 나의 모두일 수 있다. 나의 벗도 나에게 '누구임'으로 다가오지만 그 '누구임'이 그 벗의 '모두'는 아니다. 그저 그로 있는 그 수많은 '누구임'들 가운데 '몇몇'일 뿐이지 '모두'는 아니다. 그러니 나는 누군가에게 '누구임'으로 다가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음'이지만 그로 인하여 항상 나는 누군가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누구임'이 있다는 것도 '어쩔 수 없음'이다. 나의 모두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이며, 나의 '몇몇'만이 누구임으로 다가가 그들에게 '뜻'을 품게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그 뜻을 나 역시 그들의 얼굴에서 마주하며 나의 누구임을 마주해 알게 된다. 나와 더불어 있는 이들은 나의 누구임을 나에게 알려주는 '내 있음의 스승'이다.
나는 내 아이의 얼굴에서 나의 누구임을 본다. 내 아이의 얼굴에서 나는 나의 누구임을 알게 된다. 나는 내 강의를 듣는 이들의 얼굴에서 나의 누구임을 본다. 그리고 알게 된다. 내 아이와 내 강의를 듣는 이들은 나에게 나의 누구임을 알려주는 내 있음의 스승이다. 그 스승의 알려줌으로 나는 내 누구임을 알게 된다. 물론 나와 더불어 있는 그들도 나의 모두를 있는 그대로 아는 이들이 아니라, 나의 몇몇을 그들과 나의 만남이란 조건 속에서 알 뿐이지만, 어쩌면 바로 그 만남이란 조건이 내가 그들에게 살아있는 누구임으로 있게 되는 내 있음의 시간이며 공간이기에 그렇게 만들어진 내 누구임을 내가 알게 된다는 것은 제대로 모두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그 순간 그렇게 산 그 만남 속 진실된 누구임을 알기는 충분한다. 그렇게 더불어 있음으로 나는 '누구'가 '누구임'을 확인받는다.
나는 누군가의 '그저 있음'을 만나지 않는다. 그런 만남은 없다. 항상 나는 누군가의 '누구로 있음'을 만난다. 즉 누군가의 누구임을 만난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얼굴에서 나는 나의 누구임을 마주하고 더욱더 단단해진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누구임을 확인받고 확인시켜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론적으로 의존해 있다.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 의존적이다. 그의 얼굴에서 나에게 다가온 나의 누구임에서 나는 그에게 내가 누구이어야 하는지 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게 되고 확인하게 된다. 서로 같은 있음의 격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누구임을 드러내 보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어찌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그 만남에서 말이다.
2020 11 09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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