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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

더불어 있음의 철학, 따스한 품이 되려 한다- 편집성 인격장애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9. 26.

더불어 있음의 철학, 따스한 품이 되려 한다. 

 

편집성 인격장애(paranoid personality disorder)는 남을 계속 의심하게 하는 인격장애입니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계속 속이고 이용하고 있다고 확실한 근거도 없이 그리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장애입니다. 그런데 막상 스스로는 그것이 객관적 사실이라 믿고 있기에 자신이 편집성 인격장애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냥 말만 들어도 힘들겠지요. 남들이 계속 자신을 의심하고 이용하며, 악의를 가지고 자신에게 접근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얼마나 힘들까요? 그로 인한 우울은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으니 과도하게 자신을 드러내려 합니다. 함부로 자신을 이용하기 마라, 자식을 속이지 마라,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 과도한 자기 과시와 과장(self-aggrandizing)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슬픈 일입니다. 

 

자신을 향한 별생각 없는 말도 악의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향한 친근한 태도도 왜 친근한지 의심하고 그 가운데 분명히 악의가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적대적이고 경멸하려는 태도로 이해하고 의심의 눈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참 삶 자체가 힘들겠지요. 남의 선의도 악의로 왜곡하는 ‘의심증(suspiciousness)’에 빠진 이들은 자신의 의심이 객관적 사실이라 확신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 객관적 사실이란 것도 주관이 만든 의심일 뿐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주장과 의심이 실제에 어울리지 않지만, 상당히 공격적이고 집요하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주장하곤 합니다. 그렇게 산다면, 그와 같이 있는 이들은 그로 인해 힘들겠지만, 누가 자신의 호의 혹은 별 신경 쓰지 않은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의심하고 악의라고 생각한다면, 그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할까요. 그러니 편집성 인격장애는 대인 관계도 힘듭니다. 경우에 따라서 의처증과 의부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아내와 남편 혹은 연인이 다른 이를 만나 성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땅한 근거가 없지만, 이미 자신은 그것을 객관적 사실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의심을 객관적 사실이라 믿고 생활하니 가정생활도 쉽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선의와 호의도 의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회와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음모가 있다는 음모론을 객관적 사실이라 확신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남들의 세상은 하나의 객관적 사실이란 것을 음모론은 더욱더 확실하게 보증해줍니다. 일반화시켜버립니다.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도 어떤 음모에 의하여 자신이 힘들다고 생각. 그리고 그것이 객관적 사실이라 믿는다. 또 그 차원이 세상 전체로 확대된다. 그래서 이 세상엔 어떤 음모가 있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생각만 해도 답답하고 힘든 삶이다. 

 

혹시 남들이 자신을 그들의 이익에 따라 이용하고 괴롭히고 악의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며, ‘확실한 증거 없이(without sufficient basis)’ 의심하고 살아간다면, 이 사회가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있다고, 과도하게 신경 쓰고 있다면, 

자신의 이야기가 타인에게 악의적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불안에 대화 조차 힘들게 한다면, 남의 호의와 선의가 사실 악의를 위한 수단이라 의심하고 있다면, 쉼 없이 원한의 감정에 빠져 있다면, 사랑하는 연인과 배우자를 쉼 없이 의심한다면, 어쩌면 편집성 인격장애일 수 있다. 그것은 성격이나 우울감 같은 것이 아니다. 인격장애다. 

 

이런 편집성 인격장애는 더불어 살지 못하는 사회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더 엄밀하게는 더불어 살지 못하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홀로 자신만 답이라 생각하는 부모에 의하여 자녀에게 일어나는 장애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과도하게 규율을 강조하고 무척이나 공격적으로 그리고 엄격하게 훈육하는 가운데 자녀의 마음은 큰 자존감의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런데 더 아플 수 없기에 이 비난과 폭력은 자기 자신의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시선들의 문제로 그 문제의 방향과 원인을 돌려 버림으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태도에서 편집성 인격장애는 발생하게 된다. 더불어 있지 못하고, 부모만이 홀로 답이라 주장하며 그 답을 강압적이고 공격적이고 부적절한 행동으로 강요할 때, 자녀는 편집성 인격장애라는 상처를 받게 된다.  많은 편집성 인격장애는 어린 시절의 다양한 학대로 인하여 발생한다. 그리고 남들을 의심하며 남들의 걱정의 말도 의심하기에 편집성 인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편집성 인격장애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치료 자체로 쉽지 않다. 아직 효과적인 치료제가 보고 되어 있지 않다. 

 

‘더불어 있다’는 것은 서로 다름의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 다름 가운데 하나를 답이라 강요하며 다른 답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더불어 있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르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서로 다른 답이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며 있을 때 더불어 있는 것이다. 자녀는 아직 어리다. 당연히 실수하고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어쩌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삶이 서툰 그 자녀의 그 서툰 실수를 실패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 서툰 애씀과 노력을 아프지 않게 더불어 있어 주어야 한다. 쉽지 않다. 서로 다른 여러 상황에서 자녀들의 그 서툰 애씀을 어떻게 따스하게 안으며 더불어 나아갈지는 부모에게 숙제다. 하지만 부모 자신의 답만이 답이라며 자녀의 실수는 자녀의 의도된 실패라는 식으로 과도하게 폭력적으로 훈육을 하는 경우, 그 순간의 실수는 자녀를 정말 실패하게 하고, 평생 남을 의심하며 우울하며 살아가는 편집성 인격장애를 남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020 09 26

유대칠 (오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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