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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

'하나'의 목숨으로부터 '전체'의 목숨을 향한 '전태일'이라는 '다리'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1. 13.

누구나 자신의 세상을 살아갑니다. 비슷한 시대를 산 노가다 일꾼 저의 아버지와 대기업 삼성의 이건희는 같은 세상을 살았다고 말하긴 힘들 것입니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그 세상에서 한 개인은 참으로 유한합니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유한합니다. 나의 끝을 넘어선 아픔에 대해선 정말 말 그대로 남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당연시하고 살아갑니다. 나의 배고픔은 그리도 아프지만 남의 배고픔은 철저히 남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 속에 유한하게 살아갑니다. 자신의 말이 얼마나 남을 아프게 하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년 전 한 친구는 지금 생각도 기억도 나지 않은 이야기를 저에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너 같은 지방대에 사라진 철학과 출신에 지금은 어디에도 소속이 없는 사람이 교수되기는 불가능하고 어디 학자라고 인정이라도 받겠느냐." 어찌 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당연시 여기는 사실을 그는 웃으면서 1=1+2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이 저는 참 많이 아팠습니다. 누구도 학자로 인정하지 않을 사람인데 스스로 학자로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그는 참 슬픈 사람이 아닐까요. 그 말을 들을 사람이 얼마나 아플지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합니다. 말 그대로 남의 아픔이니 말입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나 아닌 이의 아픔을 다 알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 아픔에 점수를 매기며 그 정도 아픈 것은 별 것 아니란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작은 일도 누군가에게 목숨이 오가는 일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나는 나의 끝, 나의 몸 밖의 남, 그 남의 아픔에 대해선 쉽게 이야기하고 쉽게 이야기하고 쉽게 판단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끝을 가진 나란 존재의 너무나 당연한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많은 경우 나를 무시하지 말라는 외침을 혁명이란 이름으로 냅니다. 서로 나란 작은 유한한 세상 속을 살아간다면 그래서 서로의 아픔을 모른다면, 적어도 무시하거나 이용은 하지 말라는 외침을 냅니다. 서로 다른 여럿이 각자의 권리를 지키며 살자는 서구의 민주주의도 어쩌면 서로의 아픔을 모르는 다수가 어떻게 하나의 사회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일지 모릅니다.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무엇을 달라는 외침이 아닙니다. 그를 움직인 것은 그 보다 어린 여공들의 아픔이었습니다. 남의 아픔이 전태일을 움직임입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그의 끝, 그 몸에 불을 지르며 유한에서 무한을 향하게 됩니다. 전태일이란 한 사람은 이제 한 사람이 아닌 거대한 보편의 정신이 되어 버립니다. 아프고 힘든 노동자의 고난, 그 고난의 순간이면 우린 전태일을 부릅니다. 그의 정신을 부릅니다. 저마다 각자의 권리를 소리치며 그것이 모두라는 식으로 살아갈 때 전태일은 우리 가운데 나와 다른 나, 바로 너의 아픔을 만나 반응하며 유한에서 무한을 향했습니다. 권리의 외침과 차원이 다릅니다. 그것은 유한한 나의 안에서 외치는 유한한 나의 외침이지만, 너의 아픔에 대한 반응은 나의 끝을 무너뜨리고 너에게 달려가 우리가 되는 우리 됨의 외침입니다. 아집으로부터의 자유, 나 하나의 존재에 홀로 머무는 유한 속 구금으로부터의 자유, 그 자유는 유한에서 무한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가장 치열하고 진실한 애씀입니다. 전태일은 바로 그것이 인격화된 존재입니다. 나 하나의 목숨(spiritus)으로 살면서, 나의 몸 가운데 이런저런 아집으로 홀로 외롭게 나만의 권리를 외치는 그 작은 유한에서 벗어나, 그 유한의 밖 너에게 우리라며 달려가 더불어 있는 그 더불어 있음의 정신, 바로 그 정신의 인격화가 바로 전태일입니다. 하나의 목숨으로부터 우리 모두의 목숨, 전체의 목숨으로 나아가는 유한과 무한의 다리, 바로 그 다리가 전태일입니다. 권리, 권리의 쟁취를 위한 집합,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 다른 권리들이 그들 사이 교집합의 정도로 모인 집합은 어느 순간 그 목적이 이루어지면 서로의 차이만이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이 땅 수많은 진보들은 서로 갈라지고 갈라져왔습니다. 굳이 진보까지 갈 것 없이 서로가 서로의 작은 말 조각 하나를 가지고도 나와 왜 다르냐며 화를 내며 흩어져버렸습니다. 권리의 쟁취가 아닌 유한의 목숨에서 무한의 목숨으로, 홀로 있음에서 더불어 있음으로, 너와 다른 나로 있음에서 너와 더불어 우리 가운데 나로 있음으로, 너의 아픔이 남의 아픔이 아닌 우리의 아픔으로. 전태일은 지금도 우리에게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유대칠2020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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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모독자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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