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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

신앙(fides)이란 무엇일까?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10. 5.

신앙이란 무엇일까? 믿는다는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여러 각지 생각을 한다. 쉽지 않다. 우선 사랑을 생각한다. 사랑은 능동이며 수동이다. 아니 할 수 없는 마음에 사랑한다. 하고 싶어 생기는 마음이 아니라, 일어나는 마음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드리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드리는 것, 내 영혼 가운데 일어난 것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 그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그렇게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에게 어떻게 좋음이 될지 생각한다. 나의 좋음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어떤 것이 좋음인지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웃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좋음을 발견한다. 그의 웃음이 남의 웃음이 아닌 나의 웃음이 된 것이다. 그렇게 그와 더불어 있게 된다. 그럴때 사랑이 가능하다. 그에게 무엇인가 좋음을 행한다는 것에서 행위이지만, 그 행위를 아니 할 수 없다는 점에선 수동인 그러한 것이 사랑이다. 아니 할 수 없어 그에게 좋음으로 있고자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으로 나와 그는 남이 아닌 우리가 된다. 서로가 서로의 무엇임을 그 사랑 가운데 마주한다.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 

신앙 역시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참 힘들다. 고민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에게 보이는 나, 그에게 좋음은 무엇일까? 그는 많은 돈을 바친다고 좋아하진 않는다. 만일 신이 그렇다면 신은 부자만을 사랑할 것이다. 자신에게 많은 것을 바치는 존재만을 사랑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부자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이가 아니다. 그는 이 세상을 누구의 것을 만들지 않은 분이며, 이 세상 모든 있는 것을 품고 있는 그런 분이시다. 그런 분이 돈과 같은 것으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신이 좋아하는 것, 그것을 능동적으로 행함으로, 그것을 아니 할 수 없음으로 그것을 행함으로 신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것이 신을 향한 사랑이라면 당장 무엇이 신이 기뻐하고 좋아할 것인지 능동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신은 모두가 웃는 것, 모두가 좋음을 나누고 있는 것을 좋아하신다. 어느 누군가는 더 많이 가지고 누군가를 덜 가짐으로 아파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웃으며 서로 나누고 있는 그러한 모습을 좋아하는 분이다. 경쟁만을 강조하며 누군가를 승리하여 더 가지고 누군가를 패배하여 덜 가지는 그러한 곳, 누군가의 웃음이 누군가의 눈물을 거름으로 자라는 그러한 곳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다.

신앙은 신이 좋아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그것을 행함으로 신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그러한 사랑이다. 그러한 사랑이라면 신의 기쁨을 위해 모두에게 좋은 것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 나의 삶이 신의 기쁨이 되면 그 기쁨이 동시에 나의 기쁨이 된다. 신이 정말 원하는 나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 그 신이 정말 원하는 나에 대한 신의 생각이 나의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나 신 역시 기쁘고 나 역시 기쁜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신앙이 앎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되어 하느님에게 기쁨이 되고 나에게 기쁨이 되면 하느님과 나의 존재가 더불어 웃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 나를 비롯한 나의 이웃들 모두를 위하여 더불어 웃게 되는 것이 또 신앙이다. 이 땅을 살아하는 이들이 서로 더불어 웃는 모습이 하느님이 웃으시고 , 사랑하는 하느님의 웃음에 우리 모두가 다시 웃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이란 앎이 아니다. 신앙이란 살아가는 행위의 이름이다. 신앙은 교리를 안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행위다. 어느 것이 하느님에게 더 좋은 것인지 능동적으로 고민해야 하고, 그것을 수동적으로 아니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어느 것이 모두에게 더 좋은 것인지 능동적으로 고민하며 수동적으로 아니 할 수 없는 것, 그것을 매순간 고민하며 동시에 그 고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은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의 이름이라 했다. 그 행위가 없으면 아무리 많은 신앙의 지식을 가져도 신앙인이 아니다. 신앙인은 신앙이란 구체적 행위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신앙이 삶인 사람이다. 하느님에게 좋음을 생각하고 모두에게 좋음을 생각하며 그것을 실천함으로 모두의 좋음을 보고 하느님의 좋음을 보며 웃는 것, 그렇게 아집을 떠나 우리 가운데 고민하는 나로 살아가는 것, 능동적이고 수동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이다. 그렇다면 결국 신앙이란 것도 하느님과 우리와 더불어 정말 내가 되어가는 나의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하느님이 생각하는 나 ,하느님이 능동적으로 나에게 원하시고 생각하시는 바로 그 나, 그 나를 능동적으로 사고 하며,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나란 존재라면, 바로 그런 것이 신앙 속 나라면, 그런 나란 존재의 '삶'이란 신앙 가운데 하느님의 이끔과 나의 능동적인 생각하고 실천으로 이루어진 하느님과 나의 공동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 자세히는 하느님과 우리 그리고 나의 더불어 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오캄연구소) 씀

2019년 10월 5일 금요일

 

나와 아들 그리고 딸... 하목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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