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장 17절
17 그분은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하는도다.
나의 눈에 참으로 별 것 없는 것도 하느님의 품에 아름다운 그 무엇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함부로 값을 내기고 등급을 매깁니다. 구두를 닦으시는 어느 할아버지께서 실수도 저의 구두를 더욱더 많이 수선해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부탁한 것보다 더 많이 좋게 해 주신 것이지요. 할아버지는 가격을 더 받지 않으시면서 저에게 이런 말을 해 주셨습니다. "수십 년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구두만 닦아도 실수하는 것이 사람이다. 나도 사람 짓했다"라고 말입니다. 지금 그 할아버지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가 10여 년도 더 전 결혼할 무렵 나에게 남긴 이야기는 지금도 나에게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못된 나는 할아버지는 그저 구두 도사 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그 할아버지도 낮은 자리에서 나름 열심히 살아가신 분이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자리의 뜻을 일구며 살아가시는 소중한 하느님의 한 순간, 하느님의 한 몸짓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에게 지금도 남아있는 지혜를 남겨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구두를 신을 날이면 종종 할아버지의 일이 생각납니다. 그 말에 저는 저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 조금은 관대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사람이니 말입니다.
서두르고 이기고 더 많이 가지려 하면 소중한 삶의 순간들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구두 할아버지의 지혜도 그냥 지나쳐 버렸을지 모릅니다.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어쩌면 정말 소중한 지혜가 우리의 곁에 우리와 더불어 있을지 모릅니다. 단지 나란 사람이 그것을 보지 못할지 모릅니다. 지혜의 말씀은 지나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나의 삶을 흔드는 무엇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며, 지혜의 순간은 일상 속 누군가와의 더불어 있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에서 어쩌면 우린 예수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통하여 예수는 그렇게 나아가 다가와 지혜의 말씀을 남기시기도 하시고 또 지혜의 순간을 나의 영혼에 새기시기도 하십니다. 그분은 이미 이곳에 있으시고 이곳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난 그분의 존재 한 조각들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우리의 지금 과거와 지금 그리고 미래까지 모두 그분의 덕으로 존재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하나도 빠지지 않고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만나는 것도 예수를 만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벗의 미소에서 예수가 다가올 수 있고 벗의 눈물에서 예수가 다가올 수 있으며, 아파하는 대지로 다가오실 수 있고 나를 울리는 감동으로 다가오는 대지와 밤하늘의 별들로 다가오실 수도 있습니다. 구두닦는 할아버지의 말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간혹 제법 시원한 바람의 따스한 품에서 느끼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으니 말입니다.
내년엔 대추 나무도 한 친구 만나고 싶습니다. 봄이 되면 고추도 상추도 토마토도 키우고 만나고 싶습니다. 저와 해님과 흙과 물 그리고 바람과 작은 씨앗과 하느님이 함께 더불어 생명을 일구며 그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강의 중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책을 쓰는 순간에도 논문을 적는 순간에도 요즘은 힘들지만 기쁩니다. 이 모든 것에 나와 더불어 있으신 그분을 생각하니 참 좋습니다.
만물을 앞서 있으셨고 만남과 더불어 있으시고 모든 만물을 품고 있으신 그분의 품에서 제대로 더 깊이 안기고 싶은 욕심이 납니다. 저기 저 품들과 나의 벗들과 말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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