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에느의 숲이 아니라, 지금은 아시아 대초원 가운데 있지만, 또 다시 빵과 포도주로 제대도 없이, 그저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을 넘어서 장엄하게 놓인 순수의 실재를 향하여 저 자신을 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 저는 전체 지구를 제단으로 삼아, 그 위에 쌍의 노동과 애씀을 당신을 향하여 드러겠나이다."
드 샤르댕의 <세계 위의 미사>는 이렇게 장엄하게 시작됩니다. 빵과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 지구라는, 어쩌면 크게는, 이 우주라는 거대한 제단과 성체를 두고 하느님을 만나겠다는 무척이나 장엄한 시작입니다. 그런 미사라면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이 더불어 하나 되어 하느님을 향하는 그러한 미사가 되겠습니다.
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사실 둘이 혹은 셋이 혹은 그 이상이 하나로 만나 하나를 이루는 것이 이 세상의 원칙입니다. 싸워 이겨 정복하여 하나를 이룸이 아니라, 서로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내어주며 그렇게 하나를 이루는 것이 이 세상의 뜻입니다.
겨울입니다. 산은 가을에 딸어진 낙엽으로 가득합니다. 낙엽은 죽은 생명일까요? 나무에 의하여 버려진 배설물일까요? 하지만 저 낙엽은 새로운 생명을 품은 희망입니다. 낙엽은 자기 내어줌으로 분해되어 봄에 피어날 생명의 기운이 될 것입니다. 낙엽은 사라지지만 그 목숨을 사라지지 않고 다시 무엇이 되어 일어납니다. 하나의 목숨이 사라져도 그렇게 목숨 그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우주입니다. 사랑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내어 주면 사라지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 내어줌으로 나에게 사라졌지만 그것은 죽지 않습니다. 나에게 나의 아집으로 있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로 있을 뿐입니다.
제가 있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저 작은 산에 지금 얼마나 많은 작은 벌레들이 죽었을까요? 너무 추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으로 또 다른 벌레는 먹을 것을 얻고 또 다른 식물은 거름을 얻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에 나오는 강아지똥의 행복은 자기 내어줌으로 이루어집니다. 자신의 쓸모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때, 강아지똥은 사라지지 않고 자신을 내어줌으로 그 지독함 똥 냄새는 민들레 꽃의 향기가 되고 남들이 멀리하던 그 똥의 모습도 민들레 꽃의 아름다움이 됩니다. 사람만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이와 같이 사랑을 합니다. 사랑인 줄 모르고 사랑을 합니다. 그러니 더욱더 순수합니다. 자기 내어줌으로 자기 하나의 목숨이 사라지고 아파도 기꺼이 너를 위하여 우리를 이루며 죽어서 죽지 않겠다는 것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납니다. 그 모습 자체가 바로 예수입니다. 어쩌면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몸과 피로 바뀌는 그 기적의 성사가 아니라도 우린 이미 일상 속 자연에서 예수의 모습을 그대로 살아가는 존재들을 마주합니다.
가만히 흐르는 강을 봅니다.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안겨 있는지요. 거대하지 않아도 포근한 마을의 산을 봅니다.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안겨져 사는지요. 바로 그 자연을 두고 미사를 올리는 삶, 어쩌면 굳이 사제와 성체가 없어도 성경책이 손에 들려있지 않아도 하느님의 사랑을 온 몸과 온 목숨으로 느끼며 하나 되는 그 삶, 그저 성체를 마주하는 것을 넘어 자기 내어줌의 예수, 그 존재의 모습과 일치를 이루는 삶, 우주라는 거대한 예수 안에 안기여 나 역시 그 가운데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삶, 어쩌면 바로 이러한 삶의 미사가 우주에서의 미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과연 자기 내어줌으로 무엇을 하고 있나... 세계 위의 미사에 나는 아직 더불어 있지 못하고 그저 먼 걸음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오감 미사, 모든 감각이 사람에게 허락되는 모두를 느끼며 그 가운데 우주와 더불어 하나를 이루는 미사, 작은 풀이라도 온 힘으로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의 거름이 되어가는 모습, 열심히 ㅈ신의 삶을 살지만 결국 수많은 생명을 만나고 어울어지게 하는 작은 벌과 새들이 모습, 새벽하늘의 태양이 온 지구를 품으로 안아가는 모습, 모두가 자기 내어줌으로 더불어 하나를 이루는 이 우주를 오감으로 느끼는 미사, 그리고 스스로 그 우주와 나와 남으로 구분됨 없이 하나를 이루는 삶의 미사, 오늘 그 미사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내 생각이 미처 알지 못해 거리 두던 저 자연이란 예수의 모습에 나의 감각으로 다가가 나도 그렇게 살아보려 합니다.유대칠 암브로시오2020 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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