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일들을 말한 것은 여러분이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환난을 겪겠지만 힘을 내시오.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요한 복음서 16장 33절)
하느님은 우리의 첫 순간부터 항상 함께 해주셨습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나 하나의 삶을 봅시다. 나란 세상의 처음부터 하느님은 항상 함께 해주셨습니다. 우린 너무나 익숙해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일종의 신비입니다. 잡초 하나도 신비이며 작은 벌레 하나도 신비입니다. 사람의 눈엔 대단하지 않은 잡다한 것이지만 그 역시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던 소중하고 신성한 하느님의 피조물입니다. 어찌 보면 사람과 같이 하느님의 피조물이란 점에서 보면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도 하느님 품에선 한 형제이고 자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느님 품에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요? 어찌 보면 삶은 정말 이런저런 참으로 다양한 걱정으로 가득합니다. 한시도 완전히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세상 걱정 없다 하여도 홀로 생각에 잠길 때는 생계에서 학업에서 미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걱정이 있습니다. 하느님 품이라면 조금 쉽게 살게 하지 어찌 삶은 이리도 힘들까요. 참 힘듭니다.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세상은 나의 뜻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우린 그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뜻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에서 각자의 길에 충실히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그만입니다. 자기 내어줌으로 말입니다.
자기 내어줌의 자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깨우침의 자리이기도 하고 <성경>이 이야기하는 사랑의 자리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리도 강조하는 '더불어 있음'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있다는 것은 자기 내어줌 없이 그저 홀로 있는 여럿이 모여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어줌으로 있는 여럿이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론적으로 의존하며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인 친구의 외로움에 가난한 영혼이 풍요로운 친구는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고마운 존재일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과 부부는 서로 다투고 싸워도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론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당연한 그러한 사이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여 있을 떄,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내어줌으로 있을 때, 평화는 자연히 이루어집니다. 홀로 외롭게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평화로이 하나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더불어 하나로 있는 것은 결코 조용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품의 평화는 조용한 평화가 아닙니다. 시끄러운 평화입니다. 더불어 삶의 평화는 조용한 평화가 아닌 시끄러운 평화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며 동시에 서로 다른 여럿이 다투고 화해하며 더불어 있는 자리 내어줌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그런 시끄러운 평화입니다. 다투고 애써야 하는 그러한 평화입니다. 함석헌 선생의 글이 생각납니다.
"“평화는 흔히 생각하는 모양으로 무사무풍(無事無風)의 상태가 아니다. 생명은 흐르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제 길을 제가 여는 것이기 때문에, 그 흐름은 격류지 산속의 호수 같은 것일 수가 없다. 격동 속에서 자기를 잃지 않는 것이 평화다."
살아있는 생명이 모인 자리인데 아무도 없는 것 처럼 있을 순 없습니다. 호수 같은 평화가 아니라. 격동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그러한 평화입니다. 힘들어도 서로 하나의 길을 가기 위해 이런저런 다른 생각으로 오랜 시간 논의하고 다투고 해도 그것이 참 평화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이들의 평화입니다. 차라리 조용해도 스스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누군가 흘러가라는 곳으로 흘러가는 그 조용함이나 흐르지 않고 그저 정체된 조용함은 평화로 보이지만 사실 죽어가는 여정에 있는 것일 뿐입니다.
정말 평화는 다툼도 시끄러움도 없는 평화가 아니라, 시끄러움 가운데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평화, 생각 없이 멈추어선 평화가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아는 평화, 단지 그 목적리를 향한 수단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다투며 화해하는 가운데 걸어가는 그런 시끄러운 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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