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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그저 쉽게 더불어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1. 2.

도나 헤러웨이(Dona Haraway, 1944-)는 아무리 사람에겐 거대한 공간이라 하여도 결국 유한한 지구라는 환경에서 잘 살고 잘 죽기 위해 잘 살고 잘 죽는 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어찌 보면 참으로 이상적인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다 잘 살고 잘 죽자는 이야기는 공상 속에서나 있는 일 같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쉽게 억울한 죽음에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사람의 욕심과 흥미로 이 땅에 들어온 외래종을 생각해 봅시다. 그 외래종으로 인하여 이 땅의 많은 토착종은 죽음을 면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외래종과 토착종의 공존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아요. 이때 외래종을 죽임으로 토착종을 살리는 것은 그리고 그 외래종을 이 땅에 불러들인 사람의 책임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외래종의 죽음은 어쩌면 그에게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있게 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겠습니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말이죠. 그렇다고 외래종은 그저 쉽게 재미 삼아 죽여도 좋은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 세상엔 죽어도 좋은 그런 존재는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사실 이 지구는 더불어 살아가는 참으로 많은 벗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함부로 여기저기로 자리를 옮긴 사람의 탓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많은 벗들을 함부로 대하고 있습니다. 참 아프고 힘겨운 현실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것들과도 빵을 나누어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즉 그들도 동료(companion), 즉 cum panis, 빵을 더불어 나누는 지구란 유한한 공간을 더불어 살아야 하는 동료입니다. 지하철까지 걷는 길에 보게 되는 잡초들을 보며 그리고 가로수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안전하게 걸게 하는 인도도 저에겐 참으로 소중한 벗입니다. 때론 시원하지만 따스하게 안아주는 바람이 저의 철학적 사유의 벗이 되기도 합니다. 철학함의 시간들에, 그리고 저의 아픈 영혼에 이와 같이 많은 벗들이 더불어 있습니다. 정말 빵을 더불어 나누지 않아도 어쩌면 제가 더 많이 받으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홀로 산다'는 생각은 어쩌면 교만입니다. 더불어 살아갈 수많은 것들이 창조된 공간에 사람이 마지막에 창조되어 오히려 사람은 다른 창조물에 아우와 같은 벗입니다. 외롭지 않은 공간에 태어난 아우와 같은 벗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창세기>를 보면 말입니다. 그냥 사회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지난 과거 가운데 어느 한순간도 철저히 홀로 였던 적이 없습니다. 항상 누군가의 누구로 있었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서로 간의 벽이 더욱더 단단하고 높아져 홀로 있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쉽게 잡던 손도 나이 들어가면 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와의 포옹도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멀어지고 자신만의 작은 공간에 홀로 숨어 외로워져 갑니다. 슬픈 일입니다. 원래 그것이 삶이 아닙니다. 원래 삶은 더불어 있음입니다. 우리 생명이 처음부터 더불어 있는 것입니다. 나의 살이 되기 위해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자기를 내어 주었고, 나의 추억 속 수많은 벗들과 가족들의 순간도 나를 이루는 소중한 무엇입니다. 물과 공기 역시 자기 내어줌으로 우리의 생명이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몸도 맘도 항상 더불어 있는 누군가의 자기 내어줌으로 가능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우린 홀로 있지 못합니다. 홀로 있음이란 처음부터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홀로 있음이 당연한 세상에선 너의 아픔이 나에게는 남의 아픔일 뿐입니다. 그러나 더불어 있음의 세상에선 너의 아픔이 남의 아픔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또 다른 나의 아픔입니다. 나 아닌 나의 아픔입니다. 나와 빵을 나누는 이의 아픔입니다. 물론 나의 빵을 모두 주란 말이 아닙니다. 때론 고민이 되고 갈등이 됩니다 다툼도 있습니다. 손해를 보는 듯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만 살고 그냥 너는 남으로 두고 싶습니다. 그렇게 갈등하면서 그렇게 다투면서 더불어 있는 것은 당연한 사람의 일입니다. 더불어 있다는 것은 평안한 상태의 손쉬운 유지가 아닙니다. 더불어 있다는 것은 제법 힘들지만 제대로 우리 가운데 나로 있겠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말입니다. 나의 잘못으로 죽어가는 토착종의 죽음에 아파하며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는 외래종의 죽음도 아파하며 그렇게 돌아보고 돌아보며 우리로 제대로 더불어 있으려는 노력으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쉬운 것은 홀로 있겠다면 나만의 소유와 배부름을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고민할 것 없이 나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답이 아닙니다. 싸우고만 살고 남과 항상 자신을 비교하며 산다는 것은 스스로를 힘들고 지옥으로 밀고 가는 일입니다. 더불어, 더불어! 그렇게 더불어 나를 위해 누군가도 애쓴다는 것을, 누군가도 자기 내어줌으로 나를 있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 역시 그렇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있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더불어 있음의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지승

2020 01 02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실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 혹은 국민은행 96677343443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위의 두 권은 저의 칼럼 모음집과 묵상집입니다. 앞으로 저의 칼럼과 길지 않은 글들은 모두 일정 분량이 되면 모음집으로 묶을 생각입니다. 오캄연구소를 위하여 구입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두 권의 책은 저의 저서입니다. 더불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유대칠, <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이 책은 링크된 부크크 서점에서만 구매 가능합니다.)

www.bookk.co.kr/book/view/94794

 

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홀로 외로운 시대, 홀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불행한 시대, 정말 제대로 행복한 것을 무엇인가를 예수의 <주님의 기도>와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한 묵상 모임집이다. 더불어 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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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www.bookk.co.kr/book/view/92628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모두가 홀로 누리며 홀로 높아지려는 시대, 그 아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아프고 힘든 시대, 참된 더불어 행복하게 위한 더불어 있음의 철학과 더불어 있음의 신학을 궁리해 본다. 우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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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대한민국 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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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철학사 - 교보문고

이 책은 이 땅에서 우리말 우리글로 역사의 주체인 우리가 우리 삶과 고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한 결과물이 한국철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변방에서 중국을 그리워하며 한자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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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신성한 모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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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모독자 - 교보문고

중세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철학자 13인이 일으킨 파문과 모독의 일대기를 다룬 『신성한 모독자』. 중세에서 이단이란 그리스도교 외부에 있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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