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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신앙이란 기꺼이 나누는 어린이처럼 사는 것이 아닐까요?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1. 5.

"그 시간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하늘나라에서 누가 제일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가까이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여러분이 (마음을) 돌이켜서 어린이들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사람입니다." (마태오 복음 18장 1-4절)

오병이어의 기적을 아십니까? 굳이 성당이나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들었을지 모릅니다. 한 어린아이가 자신이 가진 다섯 빵과 두 물고기를 내어 놓아 그것으로 예수께서 5천 명을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신앙이 없이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해 봅시다. 자신의 소유만을 생각했다면, 어린아이는 그것을 내어 놓았을까요? 아닐 겁니다. 더불어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절대 내어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린아이의 마음에 예수께서 답하신 것은 아닐까요? 그 어린이와 같이 마음으로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어른이 되면 더 높아지려 하고 더 강해지려 합니다. 남들이 배고픈데 나는 빵 다섯에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면 몰래 숨길 수도 있고, 그것의 가치를 높여 팔려할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소유이니까요? 만일 예수와 5천 군중에게 그 어린아이가 자신이 가진 것을 선착순으로 팔았다면 그 날의 기적은 일어났을까요? 아닐 겁니다. 성경엔 조금 서글픈 일화가 하나 더 적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어린아이는 소유보다 공유를 선택했습니다. 홀로 있음보다 더불어 있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홀로 더 강해지려는 욕심으로 가득차 하려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잘 모르는 아이지만 놀이터에서 금세 없던 놀이를 만들고 그 놀이의 룰을 만들어 보는 아이들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어른이 되면 누군가를 만날 때 나도 모르게 계산을 하기도 합니다. 저 사람은 나에게 이익이 될까, 저 사람은 나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까... 이래저래 따집니다. 아프고 힘든 사람이 있어도 혹시나 몰래 숨겨둔 것이 있는데 괜히 자신에게 불쌍하게 보이려는 것은 아닐까... 두 손 두 발 다 있는데 왜 내가 도와줘야 하지... 등등 참 많은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더불어 있을지 않을까 이유를 만들어 붙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사실로 믿고 속지 않겠다고 고개를 돌려 버립니다. 누구를 보아도, 결국 보는 것은 자신의 이기심과 아집인 것입니다. 그렇게 이기신과 아집으로 강해지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예수는 아니라 단언합니다. 예수는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작지만 아픔을 아프다 하는 사람, 도울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오병이어를 기꺼이 내어 놓은 어린이와 같은 이라고 합니다. 세월호 이야기 앞에 저의 아이들은 아픈 이야기라 합니다. 더불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그것으로 이런저런 논리로 미화하며 자신들의 이기심과 아집을 볼 때, 아픔을 아픔으로 보는 것은 어린아이였습니다. 과연 누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이들일까요? 물을 물로 보지 않고 물을 보면서 생수로 팔아먹을 생각하는 어른일까요? 물을 그냥 물이라는 어린이일까요? 산을 산으로 보지 않고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어른일까요? 산을 그냥 산이라 하는 어린이일까요? 과연 누가 천국 사람에 더 가까운 것일까요?

아프고 힘든 세상입니다. 어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마음보다는 어쩌면 더 강해질까 오직 그것으로 움직이는 세상입니다. 없으면 무시당하고 있어야 당당한 그런 세상입니다. 그러나 모두 더 가지려 합니다. 가진 것이 많아도 더 가지려 합니다. 만족도 공유도 모릅니다. 공유도 자기 선행을 과시하여 더 착한 이미지도 더 높은 부자가 되려 하는 그런 서글픈 세상입니다. 이 처럼 어떤 식으로든 더 가지면 되는 그런 세상입니다. 부당하게 더 벌어도 상관없습니다. 노동자는 아직도 억울하게 부당함의 자리에게 초코파이 하나 제대오 먹지 못하고 울며 있는데, 부자들은 조롱이라도 하듯이 큰소리치는 세상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부자를 부러워하는 그런 서글픈 세상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그 더불어 있음의 마음, 공유의 마음이 참 힘든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우리의 희망은 오병이어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아집으로 살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바보 같은 것이라 조롱당해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오병이어를 건넨 그 어린이가 생각납니다. 그가 그립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런 어린이를 예수께선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이 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1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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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철학사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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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모독자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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