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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더불어 빵을 먹는 곳이 교회입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1. 1.

정말 사람은 흩어져 살 수 있을까요? 근대 이후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남들과 사는 것이 신경 쓸 것도 많고 머리도 아파서 세상을 떠나 수도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이들 본 적도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이유가 신과의 합일이나 깊은 진리로의 여정에 이웃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란 이들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는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이웃을 적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옥에 갈 사람이라며 독설을 하는 이들도 있고, 신앙에 방해가 될 뿐이라며 등 돌리는 이들도 있고 말이죠. 사실 그렇습니다. 남들과 같이 산다는 것, 남의 시선들이 쉼 없이 자신의 삶에 찾아오니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린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나'란 존재가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과 더불어 있는 가운데 나란 존재는 온전히 나란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웃을 조금 더 확대해 보겠습니다. 나 아닌 사람으로 확대해 보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그냥 유대칠이 아니라,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바로 유대칠입니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선생이고 누군가의 벗이고 누군가의 동료인 사람이 바로 유대칠입니다. 이러한 수많은  여럿과 더불어 있는 그 여럿의 하나 됨이 유대칠입니다. 그 모든 것을 떠난 곳에 유대칠은 없습니다. 유대칠의 자리는 아무도 없는 어떤 곳이 아닌 그를 그로 있게 하는 바로 그 더불어 있음의 자리입니다. 때론 그들로 인하여 힘들고 어렵지만 그렇게 더불어 있는 이들로 인하여 더불어 있는 진짜 유대칠이 됩니다.

동료는 영어로 companion입니다. 라틴어 cum panis 즉 빵을 더불어 먹는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로 볼 수 있습니다. 빵을 혼자서 홀로 먹으면 외롭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서글픕니다. 먹고 또 먹다 쓰러져도 보는 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아파하다 죽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죽어도 울 사람도 없습니다. 죽어도 기억하는 이가 없어 그를 위해 기도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빵은 더불어 먹는 것입니다. 혹시나 더불어 먹다 빵이 상한 것이라 쓰러져도 걱정 없습니다. 내가 쓰러져도 나와 더불어 있는 이로 인하여 살 수 있습니다. 그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더불어 먹기 위해선 혼자 더 많이 먹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자기 내어줌은 자기 존재를 위한 애씀이지 '패배'나 '빼앗김'이 아닙니다. 

먹지 못하던 이들도 더불어 빵을 나누어 먹던 곳에 교회입니다. 교회란 그러한 곳이었습니다. 큰 신상을 세우지 않아도 되니 그 큰 신상을 모실 거대한 성전도 없던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지하 무덤도 초기 그리스도교인에겐 너무나 소중한 교회였습니다. 높이 하늘을 향하여 건물을 올리고 세상 사람들 보란 듯이 크게 지을 필요 없이 힘들고 아픈 이들이 참아와 더불어 빵을 나누던 곳이 교회란 말입니다. 나 아닌 이를 나와 같이 사랑하던 곳, 귀족이든 노예든 형제자매라 서로가 서로를 남으로 밀어내지 않던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네 한국 교회의 첫 모습도 그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참 슬픕니다. 세상 아프고 힘든 이들이 따스하게 안겨 빵을 더불어 먹으며 형제 자매로 있는 곳이 교회였는데, 요즘 개신교회 일부에선 코로나 19 확산의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아프고 힘든 사회를 더욱더 아프고 힘들게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뿐인가요. 예수가 낮고 낮은 곳 마구간에 오셨듯이 지하 무덤, 모두가 꺼리는 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던 교회는 지금 거대한 몸집에 장사를 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화려해지려 하고, 거대해지려 하고, 그 가운데 서로 힘겨우기를 하고 말입니다. 

동료, 벗은 빵을 더불어 나누는 이들이며, 이들로 이루어진 곳이 교회였지만 참 아프고 아픈 현실입니다. 코로나19 그저 문을 닫기를 넘어 아프고 힘든 이들을 찾아 안아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이 힘겨움이 가진 자들보다 더더더 깊고 아플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쩌면 그리스도교는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빵을 더불어 나누며 말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1 01 01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실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 혹은 국민은행 96677343443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위의 두 권은 저의 칼럼 모음집과 묵상집입니다. 앞으로 저의 칼럼과 길지 않은 글들은 모두 일정 분량이 되면 모음집으로 묶을 생각입니다. 오캄연구소를 위하여 구입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두 권의 책은 저의 저서입니다. 더불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유대칠, <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이 책은 링크된 부크크 서점에서만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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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홀로 외로운 시대, 홀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불행한 시대, 정말 제대로 행복한 것을 무엇인가를 예수의 <주님의 기도>와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한 묵상 모임집이다. 더불어 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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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www.bookk.co.kr/book/view/92628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모두가 홀로 누리며 홀로 높아지려는 시대, 그 아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아프고 힘든 시대, 참된 더불어 행복하게 위한 더불어 있음의 철학과 더불어 있음의 신학을 궁리해 본다. 우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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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대한민국 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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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철학사 - 교보문고

이 책은 이 땅에서 우리말 우리글로 역사의 주체인 우리가 우리 삶과 고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한 결과물이 한국철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변방에서 중국을 그리워하며 한자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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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신성한 모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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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모독자 - 교보문고

중세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철학자 13인이 일으킨 파문과 모독의 일대기를 다룬 『신성한 모독자』. 중세에서 이단이란 그리스도교 외부에 있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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